• 최종편집 2024-12-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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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울은 “잘생긴 젊은이였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그보다 더 잘생긴 사람이 없었고, 키도 보통 사람들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삼상 9:2)
외모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암나귀를 잃고 찾아오라고 했을 때는 그 넓은 광야를 두루 찾아다녔다. 그러고도 찾을 수 없자, 종에게 “그만 돌아가자. 아버지께서 암나귀들보다 오히려 우리 걱정을 하시겠다.” 고 말할 줄 알았다. 청년 사울은 순종의 미덕만이 아니라 상황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왕이 된 사울은 병사들의 수고를 따뜻하게 위로할 줄 알았다. 과격파들로부터 우유부단하다는 힐난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싸움에서 패한 장병들을 함부로 처단하기를 삼가는 아량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감정의 오르내림이 심해지고 스스로 제어할 수 없게 되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은 사울이 나쁜 영에 사로잡혔다고 수군거렸다. 음악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충고를 받아들인 사울은 비파를 잘 타는 이를 물색하던 끝에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는 이세의 막내아들 다윗을 데려온다. 혈색이 좋고 눈이 아름다운 젊은이. 손에 비파를 들고 있던 젊은이는 곧 근위병으로 채용된다.  
별것도 아닌 소박한 악기로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다듬어 낼 줄이야! 사울은 기뻐했다. 마음이 우울해지고 가까이에 “나쁜 영”이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면 다윗을 부르곤 했다. 그의 비파 소리는 부드럽게 사울을 감싸주는 것이었다. 마음이 안정을 얻게 되고 악령도 그의 곁을 떠나는 것 같았다.
다윗의 진가는 싸움터에서 두드러진다. 왕의 명령이라면 자리를 가리지 않았고, 누구보다도 많은 공을 세웠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자신의 목숨만큼이나 아끼고 사랑해서 둘이 형제의 의를 맺는 데야. 요나단은 겉옷과 전투복 그리고 검과 활 띠마저도 다윗에게 주어버린다. 다윗은 사울의 병사들에게서도 사랑받았다. 겉보기로 사울의 다윗 채용은 성공한 것 같았다. 그러나 바로 그 성공으로 해서 세인의 이목이 다윗에게 쏠리는 것을 느끼는 사울의 마음은 오히려 괴로워진다. 현대인이라면 그를 조울증으로 진단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울을 평가한 이스라엘 사가들의 필치는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사울 평가는 거의 모두가 다윗왕궁에 속해있던 사가들의 손에서 쓰인 것일 텐데도 말이다. 그러니까 사울의 평가를 남긴 사가들은, 오랜 세월 사울과 다툰 끝에 스스로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다윗의 사람들이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 사가는 다윗의 정통성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을 지닌 사가였을 터인데도, 정작 그들이 적어놓은 사울의 모습은 비극적인 인물일지언정, 결코 악질이거나 미워할 만한 인물로는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자는 말이다.   
사울을 괴롭힌 “악령” 흔히 “악령”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루아흐 라아”는 <구약성서>에서 모두 여덟 차례 쓰이고 있다는데, 그중 일곱 차례는 사울의 행태를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를테면, <사무엘 상> 18장 10절,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에게 내리 덮치자, 사울은 궁궐에서 미친 듯이 헛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서 온 악령이 사울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셈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울을 괴롭힌 “악령” “루아흐”의 근원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하나님이 사울을 의도적으로 괴롭힌 것으로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물론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어 하는 사가들의 마음가짐도 반영되었을 터이지만, 그것 보다는 사울이라는 한 인물의 아픔은 사울만의 것이기보다는, 평균적인 히브리인들이 갖고 있는 아픔이었기 때문이라고 읽어보면 어떨까.    
“자기의 기분을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이 무너져 성벽이 없는 것과 같다.”(잠언 25:28)는 <잠언>을 알고 있는 평균적 히브리인들. 그들인들 어찌 격정 대신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또 사울인들...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만이 하나님의 계명이라고는 여기지 않았을 평균적인 히브리인들이 이룩해놓은 역사는 평안이 아니라 격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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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과 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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