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 연주자로 영어성경암송과 찬양으로 분주
김 장로는 90세의 노년임에도 하루의 일과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와 성경탐독을 하고 음악을 좋아하여 찬양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노인이지만 남다른 재능이 많은 김 장로는 오전에 컴퓨터 메일 검색으로 교계의 각종행사와 교단과 교회의 상황을 살피는 일을 하고 있다. 또한 노력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영어성경과 일본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특히 영어성경을 읽으면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등을 늘 암송하고, 일본어에도 수준급의 실력을 닦아가고 있다. 김 장로는 틈틈이 봇 글씨 습작을 하면서 심신을 다스리고 있고, 매주 종로 5가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모이는 ‘창광 금요기도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한다. “저는 매일 쉴 시간이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게 보내고 있어요. 정말 아플 시간도 없어요.”라면서 건강하고 꼿꼿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김 장로의 하모니카 연주는 유행가 정도의 간단한 실력이 아니라 주로 찬송가와 명곡들을 연주함으로 연주 실력을 인정받을 뿐 아니라 지금도 계속하고 있어 90세의 노인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김 장로의 하모니카연주 실력을 알고 있는 여러 교회를 비롯하여 음악제 등에 초청을 받는다. 예장통합 남선교회전국연합회 행사에서도 연주를 했고, 미국 애틀란타에도 초청을 받아 해외연주로 많은 은혜를 끼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한국기독교원로장로회에서 연주자 특상을 받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김 장로는 교회에서 개척멤버로서 늘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밀어주면서 장로장립은 늦은 감이 있으나 1980년 4월에 시무장로로 임직하여 18년간 교회를 섬겼다. 본 교회에서는 선교위원장을 비롯하여 교육, 행정 등등 여러 위원회에서 최선의 헌신을 다했다. 현역에 시무하면서 영등포노회 남선교회연합회 회장과 남선교회전국연합회 임원도 역임했다.
김 장로는 교단 밖 초교파 단체인 세계신도연맹과 재미목회자고국방문사업에 임원으로 사역했다. 또 한때 크리스챤선교뉴스 신문사 사장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항상 말이 적고 앞서 나서기를 못하는 성격으로서 “저는 자신을 나타내는 일을 하지 않고, 조용히 묵묵히 살다보니 벌써 90세가 됐지만 생각하면 참 보람됩니다.”라고 회고한다.
김 장로는 젊은 시절 대한모직공업주식회사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퇴사하여 신일기업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직물과 섬유 제조업을 창업하여 경영일선에서 일했다. 당시에 하나님의 복을 받아 남은 노후를 잘 보내면서 교계활동도 구김이 없이 잘 해 냈다고 한다. “동료들은 대부분 별세 했지요. 그래도 바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내게 하나님이 건강을 주신 은혜지요.”라고 하면서 늘 감사하면서 산다고 한다.
한국교회를 염려하는 김 장로는 “너무 안타깝지요. 사실은 종로 5가에 나가면 만나는 사람들 중에 저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걱정이 되는 지도자들이 많고 너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라고 하면서 교회의 갱신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김 장로가 즐겨 암송하고 있는 성구는 잠언 3장 1절부터 5절 까지“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 찬송가는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예수님은 아름다워라..”를 즐겨 부른다고 한다.
김 장로는 이팔순 권사(83세)와의 사이에 1남 4녀를 두고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장남은 예장통합 총회 소속 대전인동교회 김성천 목사로 목회를 알차게 사역하고 있다. “나는 부족하고 약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노년을 부부가 해로(偕老)하면서 자녀들이 잘 살고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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