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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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적인 신학에 있어서 말씀과 성령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은 분명하다. 말씀과 성령은 동전의 앞뒤와 같아서 서로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성령이 임하고,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칼빈은 성령이 우리 가운데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명령하는 그 교리를 우리 마음에 인치는 것이라고 가르치며 성경과 성령의 통일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성령께서는 자신이 성경에서 표현하신 그 바로 그 진리 속에서 내재해 계시므로 우리 그 말씀에 정당한 존경과 위엄을 돌릴 때에야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신다. ... 주께서는 일종의 상호 결속을 통하여 그분의 말씀의 확실성과 성령의 확실성을 하나로 묶어 놓으셨기에 성령께서 빛을 비추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게 하실 때에 말씀에 대한 완전한 신앙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그리하여 로버트 레이몬드는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 가르치는 말씀과 성령의 관계를 설명하며 “말씀 없는 성령은 망상이요, 성령 없는 말씀은 죽어있다는 것이다. 말씀과 성령은 항상 함께 가며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같은 사실은 성령세례를 받은 사도들이 여러 곳에 다니며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나타난 현상을 살펴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베드로가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 집에 청함을 받아 가서 말씀을 전할 때에 성령이 임한 사건을 “베드로가 아직 이 말을 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그 말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셨다.”( 행 10:4)라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본문은 베드로가 “아직 이 말을 하고 있을 때에”라는 현재 진행 상황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말씀이 선포되는 그 가운데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이다. 어떻게 성령이 임했는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는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성령이 임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만유의 주되심과 복음 사업 가운데 행하신 착한 일,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부활, 재림, 그리고 심판에 대한 말씀을 전하셨다고 고넬료의 가속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성령이 임함을 보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동료 사도들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며 “내가 말하기를 시작할 때에 성령께서 처음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 내려오셨다”(행 11:15)고 말하고 있다. 그들에게 말씀과 성령이 동시에 임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성령을 오게 할 수도 없고, 가게 할 수도 없다(요 3:8). 성령은 임의로 부는 바람과 같아서 우리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성령을 움직이고 일하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말씀이 전파되는 곳에 성령이 임하시고,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성령이 역사하신다.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새롭게 한다. 우리는 성령을 오게 하거나 가게 할 수는 없지만 말씀은 전할 수 있다. 말씀이 전파되는 곳에는 성령이 자동적으로 역사하실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한다. 성령이 임해야 말씀이 역사한다고 생각하고 말씀은 제쳐놓고 성령을 간구한다. 물론 성령을 구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경우라면 성령이 임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오셔서 역사하시고, 기도를 안 한다고 해서 역사를 안 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성령께서는 그의 뜻대로 일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상기해야 할 점은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훈련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이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 28:20)고 사명을 주신다. 말하자면 이들은 철저하게 말씀으로 무장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특히 예루살렘 교회의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제자들을 보면 이들은 어느 누구보다 성경에 능통한 자들이며, 스데반 같은 집사는 어느 누구 못지 않는 성경신학자인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솔로몬 행각에서 말씀 전하던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사도들을 체포하여 공회로 끌고 와서 심문을 시작하던 지도자들과 장로들과 서기관, 그리고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대 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히 말하는 것을 보고, 본래 배우지 못한 무식한 자들로 알았다가 놀랐으며,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병 나은 사람이 이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행 4:13,14)고 했다. 당대의 최고의 석학들이며 종교지도자들이 사도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제자들이 본래 무식한 자들로 알았는데 논박할 수 없을 만큼 유식한 자들이었으며, 이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제자들의 텅빈 머릿속에 갑자기 성령이 임하여 이들이 필요한 지식들은 주입시키고 할 말을 다 가르쳐 주었다고는 볼 수 없다. 성령의 하시는 일은 이미 예수께로부터 듣고 배운 말씀을 기억나게 하는 것이다(요 14:26; 16:4).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충분히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즉흥적으로 전하는 자들만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부르실 때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주시며 배와 창자에 가득 채우라고 명하신다. 그리고 이마가 굳고 마음이 완고한 이스라엘 족속에게 나아가 이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이마를 부싯돌보다 굳은 다이아몬드처럼 만들어 그들의 이마에 맞설 수 있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신다(겔 3:1-9). 그러면서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모든 말을 네 마음에 받으며 귀로 듣고, 포로가 된 네 백성의 자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여라.”(겔 3:10-11) 고 말씀하셨다. 그때에 주님의 영이 그를 들어 올리시고(겔 3:12), 여호와의 손이 그에게 강하게 임하였다고 했다(겔 3:14). 에스겔은 그의 백성들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배와 창자에 가득 채워야 했으며, 그때에 하나님의 영과 능력이 그에게 힘 있게 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선지자들이 성령의 충만한 사역을 기대하려면 그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의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하고 넘쳐야 한다. (손석태 저 “말씀과 성령” 9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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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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