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5(토)
 
2부 중세 종교개혁의 발단과 그 결과

20. 종교개혁의 대부 루터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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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스를 중심으로 보헤미아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종교개혁의 여파는 독일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지난 회에서 언급했던 프라하에서 있었던 두 가지 그림 사건, 예수와 교황의 모습을 대비한 그림 때문에 발생한 프라하 대학의 대소동 때문에 독일에서 유학 온 수백 명의 학생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후스에게 성경을 배운 그들은 독일의 각처에서 가톨릭의 가르침과는 대조가 되는 참된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러니까, 루터가 나타나기 오래 전에 이미 독일에도 종교개혁의 싹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후일에 루터는 후스의 저서를 읽고, 이미 오래 전에 보헤미아의 한 개혁자가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하여 주장한 사실을 발견하였다고 술회한바 있다.

루터의 출현과 개혁의 출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1483년 독일의 작센안할트 주의 아이스레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광산업에 종하고 있었고, 성격이 강직할 뿐만 아니라 정직하고 결단력이 있는 소신 있는 사람이었다. 루터는 아버지의 그러한 성향을 물려받아서 늘 원칙에 충실하며 진지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진실하면서도 강직하고 학문에 익숙한 특출한 인물이었다. 루터는 아버지의 권유에 의해서 법학공부를 하고 있었으나 자신은 신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집에서 대학으로 가던 길에서 바로 옆에서 떨어진 벼락 때문에 큰 공포심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신부가 되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루터는 신부로서 다른 어떤 사람들 보다 성경을 깊이 있게 열심히 연구하였으며, “기도를 잘 하는 것은 공부의 반 이상을 한 것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영성이 충만하고 경건한 수도승이었다. 그가 성경을 깊이 연구할수록 현재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가톨릭교에서 가르치는 교리나 예배나 제도상에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많은 모순점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정식 신부로 임명된 후에는 비텐베르그 대학의 교수로 초빙을 받았다. 성경에 충실한 그의 강의(시편, 복음서, 편지서 등)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영향을 주었다. 또한 그의 설교는 진리를 아주 명료하고 힘 있게 증거하였으므로 청중들에게 확신을 주었고 그의 열정적인 설교는 늘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교회에 대한 루터의 대실망과 면죄부 사건
루터가 꿈에 그리던 거룩한 도성이자 가톨릭교의 본산지인 로마를 여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루터는 그 여행과 로마 방문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과 가치관에 큰 혼란이 일어났고 교회에 대하여 대실망을 경험하게 되었다. 수도사들의 부요함과 사치와 화려함에 놀랐고, 그들의 생활 속에 만연해 있는 죄악상에 전율하였다. 심지어는 주교의 입에서 나오는 야비한 농담과 불경스러운 언행, 그들의 방탕함과 주색에 빠져있는 생활상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루터는 로마에서 감행되고 있는 온갖 죄악의 참상과 파렴치한 행동들을 목격한 다음, 로마가 지옥 위에 건설된 성(城) 같다고 술회하였다.
당시에 교황의 법령에 의해서 만들어진 ‘빌라도의 계단’이 있었는데, 누구든지 무릎으로 그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면 죄사함을 받는다고 하였다. 어느 날 루터가 경건한 마음으로 그 빌라도의 계단을 오르다가 갑자기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합 2:4; 롬 1:17)는 말씀이 우레처럼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두렵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급히 일어나서 나온 다음, 고행으로 받는 구원을 가르치는 로마교회를 더 신뢰하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특히 그는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자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면죄부 판매를 대대적으로 전개하는 과정에서 견딜 수 없는 울분을 경험하면서 가톨릭교와 멀어지게 되었고 마침내 그가 충성을 다하던 교회와 단절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면죄부 사건은 루터의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이다.
독일에서 면죄부 판매책임을 맡은 테첼이라는 수도사가 비텐베르그 성에 도착하여 온갖 미신적인 언사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면죄부를 팔았다. 면죄부를 사면 현재의 죄는 물론이고 미래의 지을 죄도 용서받을 수 있고 심지어는 죽은 자들의 죄까지고 용서받을 수 있다고 외치면서 면죄부 판매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이 사실을 목격한 루터는 죄 용서는 면죄부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면죄부를 사지 말고 믿음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라고 목청을 높여 외쳤다. 마침내 루터는 면죄부의 부당성과 비성경적인 사실을 입증하는 95개의 논제를 정리하여 비텐베르그 성 교회의 출입문에 붙여 놓았다. 이 때에 루터의 나이는 34세였다. 이 사건에 대하여 교황청은 노발대발하였으나 이 95개항의 면죄부 반박문은 급속히 독일을 넘어서 스위스, 프랑스, 네델란드 등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종교개혁의 불이 지펴진 것이다. 교황청과 수도사들은 루터에 대하여 참람된 자라고 비난하면서 교만하고 건방진 행위를 하고 있다고 맹렬한 공격을 가하였다. 드디어 선과 악 사이에 역사적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치열한 싸움터에서 루터에게는 동역자가 필요하였다. 이 때에 나타난 인물이 바로 비텐베르그 대학의 교수로 함께 일하던 멜란히톤이었다. 그는 겸손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판단력과 지식과 웅변술은 출중하였다. 순결하고 고상한 인품을 가진 그는 사람들의 칭송과 존경을 받던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루터의 과감하고 용감한 성격과 조화를 이루어 종교개혁의 큰 역사를 이루는 일에 위대한 공헌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보헤미야의 개혁자 후스에게 제롬을 보내주셨고 루터에게는 멜란히톤을 보내주셨다. 중세 종교암흑시대를 깨뜨리는 종교개혁의 역사에 하나님께서 함께 일하고 계셨던 것이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식구리라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전개되는 싸움은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자와 ‘다르게’ 믿는 자 사이의 투쟁이다. 가인이 아벨을 쳐 죽였고, 이스마엘과 이삭이 집안에서 싸웠다. 에서와 야곱 사이에 격렬한 투쟁이 있었고, 유대 민족들이 선지자를 핍박하였다. ‘말씀’의 본체이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바른 진리를 선포하셨을 때에 유대의 지도자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공격하였다. 그 후 세월이 흘러 기독교가 성경을 파묻어놓고 지극히 인위적인 종교로 둔갑을 시켜 성경과는 무관한 미신적인 로마교회가 세상을 지배하였을 때, 성경의 진리를 들고 나온 빛의 자녀들을 어두움의 자식들이 극렬하게 박해하며 살해하였다. 이러한 역사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매우 슬프고 모순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루터와 같은 진리의 투사들이 나타나서 참 빛을 드러내며 증거 할 때, 타락하고 배도한 교회의 오류에 대하여 공감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함께 나서는 용감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교권의 힘으로 개인과 도시를 파문시키면서 핍박을 하게 되면 함께 일하던 동역자들까지도 자취를 감추게 되어, 개혁자들은 사실 외로운 투쟁을 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 개신교회는 어떠한가? 개혁할 과제들이 없어서 잠잠한 것인가? 아니면, 개혁의 소리를 낼만한 루터와 같은 능력과 열정을 갖춘 인물들이 없는 것인가?
혹시 그렇게 정의롭고 용감한 개혁자들이 나타나서 엘리야나 세례 요한과 같은 개혁의 소리를 외칠 때에, 어떤 희생과 손실을 무릅쓰고라도 함께 연합하고 힘을 모아서 동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교권의 힘이나 여론이 두려워서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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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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