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에서, 그에게 지속적으로 보이는 환상들은, 죽은 시체더미가 쌓였던 해골 골짜기에서 해골들이 일어나 정예한 군대로 조직되고, 짓밟혀지고 더럽혀진 고토가 탈환되고, 그 도시 중앙에 제단이 다시 수축되어 거룩하게 된 후, 시민들과 국가가 재건되는 일들이다. 이러한 꿈을 간직한 이스라엘은 그 선지자가 꾸던 꿈을 현실적으로 오늘의 팔레스타인 땅에 건설하였다. 이들은 600만이라는 동포들이 희생되는 처참한 역사적 경험을 감내한 터인지는 몰라도, 이들이 앞으로도 세워 나갈 도시나 국가란, 오늘의 인류가 기대하여 온, 가장 이상적인 스마트한 국가로 건설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든다.
신약을 신중하게 검토해 보면 에스겔 선지자가 좀 더 높은 버전들을 내어놓은 느낌이 든다. 교회라는 것이 거룩함을 전제한 제도이긴 하지만, 그 제도도 역시 사람들로 이뤄진 시스템이라서, 제도권으로부터 가장 고귀하게 기름부음을 받은 사제들이라 할지라도 타락을 하게 되면, 야훼 하나님이 그 곳에서 떠나시기 마련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간 교회란 죽은 생선 같아서 사람의 더러운 것과 악취만 남기 마련이다. 그렇게 유대 종교는 변질되었고, 교회만 붕괴된 것이 아니라, 국가마저 파괴되어 국민 모두가 주변국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포로가 된 이 백성들은 전과는 전혀 다른 꿈을 갖기 시작한다. 그들이 살던 땅을 바라보며 기도하면서, 높은 곳에 우뚝 선 시온 성전 문지방에서 샘물이 솟아나, 그 산 아래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비전인가? 요한계시록에는 더 아름다운 아주 완벽한 환상이 열린다.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리는 강물들은 광야 같은 척박한 땅을 살려내서 열두 과일을 맺는 과수들이 경작되고, 어부가 그물을 치는 곳이 되며, 온갖 짐승들이 거하는 에덴동산이 된다. 그런데 아뿔싸, 그 아름다운 꿈이 저세상에서나 이뤄지는 꿈이 된 셈이다. 현실이 너무나 버거워서 묵시록에서나 등장할 수 있는, 죽어서나 가는 교회로 바뀐 것일까? 우리 한국교회 어른들은 천당을 죽어서 가는 곳으로 한정하였다. 죽어서나마 요단강을 건너가서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는 곳으로 보았던 것이다. 지나온 역사적 과정에서 교회의 가르침이 이렇다 보니, 천당은 죽은 자의 것이 되었고, 지금 여기에 사시는 분들은, 천당을 현실적으로 구경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교회에서 가끔 예배 때에만 들을 수는 있어도, 천당을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고 만 것이리라.
요즈음 죽어서 가는 천국을 미리 보고 온 사람들의 유투브에 올린 동영상을 듣노라면, 아예 천국이란 저 세상에나 있지, 전혀 이곳에는 없는 것처럼 인식되어진다. 요한계시록이 밧모 섬에서 기록되어 세상에 퍼져 나간 지 십년이 흐르자, 새로운 복음서가 마지막으로 기록되었는데, 바로 그 경전이 요한의 복음서이다. 이 요한의 복음에는 교회가 건물에서 개인으로 변환된다. 지극히 거룩한 지성소에 계시는 하나님의 신이신 거룩하신 영이 사람에게 임하신다. 사람의 인격에 임재하시고, 사람과 소통을 하시며, 그 사람 안에 계시며, 또한 그 사람도 예수의 영 안에 거한다. 그가 누구이든지(배웠던지 못 배웠던지, 그가 남자이든지 여자이든지, 혹은 귀족이든지 천민이든지,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모든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친히 이 세상으로 보냄을 받으신 유일하신 독생자(獨種子)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서, 그도 그의 배(人格)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흐른다. 요한은 이에 대한 주석을 붙이기를, 각 사람이 받을 성령이라 하였다.
요한의 복음에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과 은사와 직임을 받는다. 그가 예수로부터 받은 생명은 소멸되지 않는 생명이요,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서 얻는 생명이며, 이 땅에서 만이 사는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생명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마땅히 교회에서 샘물이 흘러 나와서 온 땅을 적셔내고, 그 물이 강물이 되어 사해를 살려내고, 어부들이 그물 치는 곳이 되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꿈이 지속적으로 좌절되어온 것이다. 에스겔 이후 팔레스타인에 세워진 교회도 역시, 헤롯에 의해서 세워졌으나 정치권의 마수를 벗어나진 못하였다. 그 성전도 파멸된 이후, 이천년이 흐른 뒤에, 마침내 유대인 개개인들이 교회로 건설되었다. 그들은 개개인과 가족들과 공동체가 하나님의 시간의 지성소와 말씀 앞에 선다. 유대교 버전 3.0, 이제야 아주 스마트한 교회가 세워진 것처럼 보인다. 마치 집을 나간 둘째가 돌아온 듯하다. 이들에게 마무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성령이 임하시면, 신부 같은 교회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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