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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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작가이자 사회사업가 이누가이 미치코(犬養道子)의 부음을 접하게 된 것은 일본의 종합월간지 <분게이 순주(文藝春秋)> 2017년 10월호의 “부음란”을 통해서였다.
그 대강을 간추려본다.
“작가이자 평론가인 이누가이 미치코는 2차 대전 후 일찍부터 유럽과 미국을 다니며 체험기를 발표하는가 하면, 성서연구와 난민 지원을 계속했다.
1932년 5월 15일 저녁나절, 친척집에서 놀고 있는데, 총리인 할아버지 이누가이 츠요시(犬養毅)가 관저에서 해군장교들의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다. 할아버지는 “아홉 발 쏘았는데 세발 밖에 맞지 않았어.” 하고 농담을 할 만큼 의식이 뚜렷했었는데, 밤 11시가 지나서 숨을 거두고 만다.  
그녀는 1921년 동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누가이 츠요시의 3남이고, 어머니는 남작 나가요 쇼키치의 딸. 미치코는 명가의 규수로 자란다. 할아버지 츠요시는 영특하고 활달한 손녀를 그지없이 귀여워했다.
11살 나던 해에, 그녀는 할아버지가 암살당하는 “5.15 사건”을 직접 목격한 것이다. 당시 내각 수상이었던 할아버지는 일본이 군국주의로 내닫는 것을 반대하고 있었기에 군부, 중에서도 해군 청년장교들이, 그를 살해한 것이다. 쿠데타는 실패하지만, 이후 가파르게 일본은 군국주의로 내닫게 되었고, 일본에서는 이 사건을 “5.15 사건”이라 부르게 되었다.      
미치코가 그때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이후 그녀는 그 때 그 사건과 자신의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줄곧 되묻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물음이 동기가 되어 그녀는 가톨릭으로 입문하게 된다. 당시는 이차대전 중이어서 그만한 집안 출신의 규수가 적성 종교로 인정받고 있던 가톨릭에 입문하는 일은 꽤나 어려운 결단이었을 터인데도 기어이 그녀는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는다.
종전 후 일본의 한 대학을 거쳐 1948년에 미국에 유학하지만, 결핵 진단을 받고 요양소에 수용된다. 그런데 요양을 하는 중에, 전쟁이 끝나고 폐기 상태에 있던 낙하산의 끈을 이용해서 밴드를 만든 것이 큰돈을 벌게 해준 것이다.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에서 성서학을 공부하는 한편, 옛 성을 빌려서는 유학생들이 서로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는 둥, 그녀는 언제나 열린 미래를 향하여 달려갔다. 1957년에 귀국한 후 10년에 걸친 유럽과 미국에서의 경험을 자료로 <아가씨의 방랑기>를 써서 일약 인기작가가 된다.
“일본으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이집트 오지에서 악어사냥을 하러 가겠다고 기염을 토하자 모두들 웃으며 상대해주지도 않았다.”며 당시를 회고하는 그녀는 NHK 방송국 해설자로 활동하는 한편 많은 체험기와 에세이를 발표한다. 1970년 대 이후 그녀는 아예 거처를 유럽으로 정하고, “이누가이 기금”을 설립해서 난민문제와 함께 했다. 1990년대에 막 발발한 구 유고슬라비아 분쟁 때에는 아예 현지에 들어가서 활동하는가 하면, 1999년에는 다시 크로아티아로 가서 난민을 돕는 사업을 펼쳐나갔다.   
일본 안에서의 비판이 만만치 않았다. “해외에서 난민을 도울 수 있다면 차라리 국내에서 어려운 이들을 도우라!”는 것. 이에 대해서 그녀는 격한 어조로 반론했다. “난민이란 그냥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이 아니다. 인권의 마지막 한 점(목숨)까지도 잃어가고 있는 사람이다.”하고. 1995년부터는 <성서를 여행하다>(10권)을 출판하기 시작해서 2003년에 완성했다. 그녀는 말하곤 했다. ”나는 성서를 터전으로 해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난민구제도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고. 그녀는 지난 7월 24일,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했다.
그녀의 삶은 언제나 남들이 하지 않는 일들로 점철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일을 저질러 놓곤 했다.      
내가 그녀의 저서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그녀가 <성서의 말씀>을 출간한 1986년 언저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만 해도 명동에는 외국서적을 거래하는 점포가 더러 남아있었고, 그 중 한 두 곳은 단골이 되어 있었다. 감히 단골이라고 말하는 것은, 서너 평도 되지 않는 가게에 얼굴을 내밀라치면 점주가 고무줄로 동여맨 신간서적들을 건네주는데, 집에 와서 펼쳐보면 바로 내가 찾던 책이 되었다는 농을 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말했다. 이누가이와도 단골 서점주가 그렇게 맺어준 인연이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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