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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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시고, 시내 산에 데려와서 언약을 맺어 이들을 그의 백성 삼으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40년을 행진해왔다. 지금 같으면 8시간이면 다다를 거리를 40년이나 걸려, 이제 가데스 바네아를 거쳐 요단 건너편 모압 평지에 이르렀다. 모세는 모압 평지에서 요단 강 건너편,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며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반복하여 주신 말씀 중 일부가 바로 신명기 8장의 말씀이다.
모세는 입을 열어 “너는 내가 오늘 너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며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땅에 들어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모세는 “너는 내가 오늘 너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온 백성, 그러니까 장정만 60만이 되는 이 백성을 향하여 “너희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단수형 “너는”이라고 말한다. 우리 어법에는 맞지 않지만 모세는 그의 백성 모두를 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특히 신명기를 보면 이러한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상당히 혼란스러운 부분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이점 때문에 모세 오경의 저작설과 통일성을 부인한다. 이들의 주장은 어떻게 한 사람이 똑 같은 청중을 앞에 두고 어떤 때는 복수로 “너희가 …” 이렇게 말하다가 금방 대상을 바꿔  단수로 “네가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는 분명 신명기 내에 둘 혹은 세개의 자료가 편집되었음이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온전한 정신을 갖지 않고서야 같은 청중을 향하여 단수 “너”와  복수 “너희”를 구별하지 않고 연설을 하고, 말씀을 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오경의 문서편집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신명기를 오경으로부터 분리하여 모세가 쓴 책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특히 신명기에 쓰여진 어휘 분석을 통하여 요시아 왕 때에 이스라엘의 종교 개혁 사상에 투철한 제사장이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여러 자료들을 수집하여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명기로 편집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만일에 이러한 가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고, 신명기를  비롯한 모든 성경 말씀이 무명의 인간들이 지어낸 신앙 서적이거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대를 따라 그들의 신, 여호와에 대한 신앙 고백을 정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책이다. 이 책을 믿고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맡기고, 이스라엘 사람들도 믿지 않은 예수라는 분을 믿어야 할 이유가 없다. 결국 기독교는 허구의 종교가 되고 말 것이며, 교회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실제로 서구의 교회는 이 자유주의자들의 양향으로 말미암아 쇠락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고, 그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따라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시다. 그의 성령으로 그의 선지자를 감화 감동하여 성경을 쓰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 성경에 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오류처럼 보이는 불가해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지혜나 지능이 아직 그 신비에 미치지 못하거나 하나님께서 일부러 감추어 두실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세상의 모든 신비를 다 알기를 원하시지 않는 부분도 있다.
신명기에서 모세나 하나님께서 단수 (너)와 복수 (너희)를 혼용하여 쓰고 있는 것은 언약적 연대성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언약적 연대성을 가진 특별한 민족이다. 한 사람이 이스라엘 민족 전부이고, 이스라엘 민족 전부가 한 사람이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한 사람, 한 여자로 부르고,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한 사람이 잘 못하면 모두가 잘못한 것이 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잘 하면 각각의 개인이 잘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은 한 사람이라도 지키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언약적 저주가 임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 모압 평지에서 그가 주신 이 말씀을 지켜 행하면 그들이 살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이 광야에서 살아 남은 길임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무엇인가?
첫째는 이스라엘은 40년동안 시내 광야를 돌고 돌았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돌았던 그 모든 길을 다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 40년 동안 그들이 다녔던 모든 길을 빠짐 없이 다 기억하라는 명령이다. 여기서는 그들이 격었던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었든지 다 기억하라는 것이다. 아마도 좋은 일보다는 힘들고 고생했던 일을 기억하라는 말씀 같다.
왜 기억하라고 하시는가? “이는 너를 낮추고 시험하셔서 네가 그분의 명령을 잘 지키는 지, 네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알아 보시려는 것이었다.” 는 것이다. 여기서 낮추고 시험하셨다고 했는 데, 낮추다는 말은 “아나”()의 강조형이다.  겸손하게 하다 (humble), 고생시키다. 환난을 당하게 하다(afflicted)라는 의미이다. 또한 “시험하다”는 말도 히브리어 “나사”()의  강조형(Piel)으로 훈련시키다(train), 혹은 “경험하게 하다”(experience)는 뜻이다. 그래서 “이는 너를 낮추시고 시험하셔서”라는 구절은 “이는 너를 고생시키고 훈련시키셔서 네가 그분의 명령을 잘 지키는 지 …”라 번역하는 것이 원문의 뜻을 더 잘 표현할 것 같다.
    이는 구체적으로 광야에서 목마르고 배고프게 하시다가, 반석에 샘물이 나게 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셔서 배부르게 하신 일들을 염두에 두신 말씀 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하나님 만이 자기들의 생명을 살려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이 앞뒤가 꽉 막혀 있는 광야에서 물도 없고, 양식도 없지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그 백성을 죽게 내 버려 두시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죽을 지경에 이를지라도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경과 사경에서도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하여, 사경에 이를지라도 육신의 양식보다는 우리 영혼의 양식,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양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육신의 양식을 친히 주셨다. 육신을 가진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양식만 말씀하시지 않는다. “이 40년 동안에 네 몸에 걸친 옷이 헤어지지 않았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4)고 말씀하신다. 옷도 주시고, 건강도 주셨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육신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셨다. 그래서 광야에서 울면서 이집트로 돌아갈 생각하지 말라. 이 광야 생활을 저주 하지도 말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을 마치 아비가 자식을 훈련하듯이 그들을 이스라엘을 아들로 대우하시고 훈련하셨다는 것이다. 놀랍고 감사한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그들이 광야 길에서 있었던 그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이스라엘이 기억해야 할 점은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가면 분명 잘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배불리 먹고, 좋은 집 짓고, 은 금을 비롯하여 가진 것이 풍성해질 것이다. 그때에 그들의 마음이 높아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며 배고프고 천대받고 학대 받던 날에 그들을 이끌어내어 해방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하신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된 다는 것이다. 광야에서 반석에 샘물이 나게 하시고 불뱀과 전갈이 있는 광야를 지나며, 만나와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시어 이 복지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부자가 되어 잘 살게 된 것이 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된 것임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훈련을 시키셨다는 것이다. 16-17절 말씀, “광야에서 네 조상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네게 먹이셨으니, 이는 너를 낮추고 시험하여 마침내 네가 잘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네게 마음 속으로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이 재물을 얻었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을 잊고 교만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잘 나서 이들에게 복주고, 부자 되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이다 (18).
우리 신자들도 그렇다.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잘 먹고 잘 수 있게 되어 있다. 번영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게 된다. 그러나 바로 그때에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행복에 취해서 하나님을 잊을 때 하나님은 그를 망하게 하실 수 있다. 따라서 성공의 날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선민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셨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잊었을 때 아시리아나 바빌로니아에 종으로 다시 끌려가게 하셨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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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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