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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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주하다”는 영어로는 play, 프랑스어로는 jouer, 독일어로는 spielen. 이들은 공통적으로 “유희(遊戱)”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어, 음악이란 놀이로 즐기거나, 그에 따라붙는 재밋거리들도 푸대접해서는 아니된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J. S.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그렇게 이름 붙여 부르게 된 사연이 있다. “골드베르그”란 바흐에게서 크라비아를 배우고 있던 재능 있는 젊은이 “요한 고트리브 골드베르그(1727-1756)”의 이름에서 유래하고 있다는 것.
바흐에게 적잖은 도움을 주고 있던 카이저링크 백작은 자주 라이프치히에 머물곤 했는데, 골드베르그로 하여금 바흐에게서 크라비아를 공부하게 한 것도 백작이었고, 소년은 불면증에 시달리는 백작이 잠들때까지 연주하곤 했다.   
백작이 바흐에게 숙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크라비아곡을 써달라는 부탁을 한다. 카이저링크 백작의 요청을 따라 바흐가 남긴 단 하나의 변주곡이야말로 오늘 날 모든 음악애호가들을 사로잡고 있는 바로 그 유명한 <골드베르그 변주곡>이 된 것이다. 백작은 이 변주곡을 “나의 변주곡”이라며 애지중지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언제나 ”골드베르그야, 나의 변주곡을 한곡 연주해주게나.”했다는 것이다.
백작이 바흐에게 준 보수도 화제가 되고 있다. 루이 금화를 100개나 담은 금 술잔을 바흐에게 선물했다나. 아마도 바흐가 받은 작곡보수 가운데는 최고였을 것으로 사람들은 짐작하고 있다.
이야기는 처음 바흐의 전기를 쓴 요한 니코라우스 포르게르의 <바흐전기>에 있는 이야기이지만, 연구가들 중에는 이 이야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연대를 계산해보면 당시 골드베르그의 나이가 열 너덧 살 밖에 되지 않았을 터인데 그 서툰 연주로 감히 백작을 만족하게 할 수 있었을까보냐 하는 것이 설득력을 지닌  이유 중의 하나.  
그럼에도 이 에피소드가 호사가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이야기가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이 풍기는 풍경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까 설사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지 않는다 할지라도 바흐의 작품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그런 사실과는 관계없이 <골드베르그 변주곡>이 달고 다니는 이야기라는 이유만으로 떼어내거나 버리려 하지 않는 지도 모른다.  
우리 또래 친구들이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말할 때면 안주처럼 따라다니는 에피소드가 있다. 곧 아흔을 바라보게 되는 세대가 서양고전음악에 눈뜨기 시작했을 무렵, 그러니까 대학생이었던 1950년대만 해도 음반을 통해서조차 고전음악을 접하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막 문을 연 인사동의 “르네상스”는 그래서 강의를 빼먹으면서도 죽치고 앉아있는 곳이 되어 줬지만, 그런다고 한 시간이나 걸리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한 번에 감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따금 DJ노릇을 하고 있던 천상병시인이나 훗날의 칼럼니스트 이규태에게 공갈을 치다 시피 해서야 얻어 들을 수 있었다. 그것도 아침 이른 시간에.
 그런 날이면 막걸리 잔을 둘러싸고 누구랄 것 없이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나오는 <공감 correspondence>를 읊곤 했다. “자연은 사원, 그 살아 있는 기둥들/때로 어렴풋한 말들이 새어나오고/사람은 친밀한 눈길로 그를 지켜보는/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간다./...”
최근에는 피아니스트 주 샤오메이(Zhu Xiao-mei)가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중국 상해 태생인 그녀는 어려서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여덟 살에 라디오나 TV에서 연주한다. 북경 중앙음악학원에 재학 중 문화혁명이 터져 5년간 몽골의 재교육수용소에서 지나게 되지만, 그녀는 피아노를 버리지 않았다. 1980년에는 미국에서 1984년에는 파리에서 훈련과 연주를 지속한다. 그녀로 하여금 세계의 주목을 끌게 한 것이 <골드베르그 변주곡>의 연주 녹음판이었다. 그녀는 베스트셀러 <영원한 피아노>라는 자전에서도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따라 30장으로 꾸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음악은 음악으로만 즐겨야한다는 순수파의 주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보들레르가 <공감>에서 말하듯 “어둠처럼 빛처럼 드넓고/어두우면서도 그윽한 통일 속에서/긴 메아리 멀리서 섞이어 들 듯/색과 향과 소리가 서로 화답...”해오는 풍경들인들 어찌 함부로 대접할 수 있을까.   
 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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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베르그 변주곡’에 엉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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