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을 통해서 클래식 음악을 즐겨온 사람이라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는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와 피아니스트 제럴드 무어를 기억할 것이다. 디스카우는 적어도 일곱 번 이상 <겨울 나그네>를 녹음했고, 두 세 차례 이상을 제럴드 무어와 협연했다는 기록만으로도.
피아니스트 제럴드 무어(Gerald Moore, 1899-1987)를 말하면서 굳이 <겨울 나그네>와 바리톤 디스카우를 앞세워 운을 띄우는 것은 피아니스트 무어의 연주활동이 가곡의 반주나 다른 연주자와의 협연에 한정되어있다는 사정 때문. 그래서 제럴드 무어라는 이름 앞에는 “반주자”란 타이틀이 따라 붙기 마련이지만, 파브로 카잘스, 엘리자뱃 슈만, 매기 테이트, 캐서린 페리, 등, 수많은 명연주자들이 그와 공연하기를 원했고, 수많은 명반을 남길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주자란 가수에게 종속되어 있는 존재로 여겨졌다. 연주회에 따라서는 프로그램에 반주자의 이름은 올려놓지 않기가 예사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성악이나 기악 가릴 것 없이 리사이틀에서 반주자의 이름이 무시되는 일은 거의 없게 되었다. 제럴드 무어야말로 반주자를 동등한 공연자로 올려놓은 장본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인 주장을 남달리 강하게 내세우지는 않았다. 1962년에 출간한 반주자로서의 자신의 회상록 <Am I Too Loud?>의 제목이 보여주듯, 겸손과 조화를 앞세우는 자세로 일관했다.
“내 소리가 너무 크지는 않나요?” 하고 협연 상대에게 겸손한 자세로 임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남달리 소심하다거나 아부하는 체질을 타고 난 탓은 아니었다. 갈고 닦은 연주 실력에 더해 충분한 인문적 지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 소리가 너무 크지 않느냐?” 하고 말하는 것은 공연하는 가수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소극적인 반주를 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음악의 요구에 보다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연주를 하겠다는 자세를 유머에 담아 보내는 메시지였다는 것.
무어의 친구이기도 했던 매기 테이트가 그녀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음반을 들으면서 제럴드 무어와 다른 피아니스트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터이다. 그가 다른 피아니스트와 구별되는 자질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마이크로폰과의 거리에 걸맞게 팔의 무게를 조절할 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의 칭찬을 되받아 무어는 말한다. “나는 매기의 칭찬에 감사한다. 그러나 그 칭찬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다. 그것은 내 자신이 마이크로폰과의 거리에 따라서 강약을 조절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의 의견을 보탤 수 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긴 하지만, 나와 공연자에게서 균형 잡힌 소리를 녹음해야하는 책임은 어디까지나 녹음담당자의 몫이란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더 보탠다면 내가 연주한 레코드에서 나의 피아노를 충분한 음량으로 들을 수 있다고 한다면, 다시 말해서 그 녹음이 완전하게 규형 잡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녹음담당자의 공적인 것이다.”
우리는 위의 두 글에서, 두 사람의 상반된 강조점을 두고 어느 쪽이 옳고 그른가를 가려내기 보다는, 두 사람의 깊은 속내를 헤아릴 수 있어야 하리라.
한편 무어의 글에서는 따끈한 회초리도 감지할 수 있다. 자신과 공연한 적이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시게티에 대한 기록에서이다. “빼어난 음악가 요제프 시게티가 피아노를 담당하고 있는 동료를, 이를테면 동격의 소나타를 연주할 경우에서라도, 마치 심부름꾼을 대하듯 하는 데에는 실망했다. (여기에서 동격의 소나타란 작곡자가 분명하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라고 명시하고 있는 작품을 연주할 때의 경우 등을 말한다.)
나는 시게티와의 연주회에서 연미복을 입는 노릇은 시간낭비란 사실을 알았다. 그와 나 그리고 청중 사이 건반 끝에 서서 내가 청중으로부터 보이지 않게 했다. 연주를 마쳤을 때, 시게티는 나를 향하여 마치 심부름꾼을 부리듯이, 그대도 청중의 박수에 응답해도 좋다는 허락이라도 해 주는 듯, 근엄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나는 시게티와 함께 연습했을 때의 기쁨과 은혜를 한 순간도 잊은 적은 없다. 다만 연주회에 있어서만은 결여된 그의 인간성이 드러나고 마는 것이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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