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2부 중세 종교개혁의 발단과 그 결과

26. 반종교개혁 세력-제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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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세월동안 견고한 터를 닦아놓은 가톨릭 세력에 저항하면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그릇된 교리와 관행들을 바로잡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여파로 가톨릭의 세력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고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된 것이 사실이다. 개혁자들과 개혁신앙을 추종하던 사람들의 피 값으로 얻어진 열매였다. 그러나 그 막대한 권력을 소유한 로마 교회가 개혁 세력을 방치할 리가 없다. 수많은 방법을 동원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혁을 저지하고 개혁 세력을 박멸하기 위하여 집요한 노력을 기울이던 중에, 종교개혁의 흐름에 치명타를 입힌 사건 중에 하나가 바로 제수이트 단체의 출현이다.

제수이트(예수회)가 조직됨
‘제수이트’라고 하는 단체는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의 로욜라(Loyla)라는 성에서 1491년에 태어난 ‘이니고 로페즈 드 레깔데’(Inigo Lopez de Recalde)에 의해서 창설되었다. 후에 가톨릭식으로 개명한 이름이 이그나시우스(Ignatius)이기 때문에, ‘이그나시우스 로욜라’라고 부르게 되었다. 로욜라 출신 이그나시우스라는 의미일 것이다. 최초 6명의 단원으로 이 단체가 창설된 것은 1534년이지만 그 당시 활동에는 상당한 제한이 있었고 종교재판소의 제약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540년 교황청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복종을 맹세하고 교황 바오로 3세의 승인을 받은 후부터 가톨릭의 확고부동한 단체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저명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이그나시우스는 독특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경건하면서도 처세술에 매우 능했고, 금욕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속적인 지식도 풍부한 사람이었다. 신비주의 성향이 농후하였고 아주 냉정하고 냉혹한 성격으로 매사를 철저하게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이그나시우스의 이러한 성격이 제수이트의 특징과 정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진다.

제수이트의 목적과 정신
제수이트를 조직하게 된 주요 목적은 첫째는 종교개혁의 여파로 약화되고 있는 로마 가톨릭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함이었고, 둘째로는 가톨릭 안에서 교황청의 권력을 옹호하는 것이었으며, 셋째로 개신교를 핍박하고 견제하며 더 나아가 박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경제적으로 세계의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제수이트 단원들은 철저한 세뇌교육과 혹독한 영성훈련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오직 교회에 충성해야 하기 때문에 가정을 갖지 말아야 하며 평생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들의 정신은 상부 권위에 대한 ‘절대복종’과 ‘비밀유지’였다. 다음은 교육과 훈련을 마친 다음 제수이트 단원들이 서약하는 내용의 한 부분이다.  
“나는 기회가 되면 비밀리에 혹은 공개적으로 모든 이교도들, 프로테스탄트들, 자유주의자들과 무자비한 전쟁을 일으키고 싸울 것이다. 지구상에서 그들을 전멸시키고 근절시키라고 지령받은 것들을 실행함에 있어 나이, 성별 혹은 조건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악명 높은 이교도들을 목 매달고 불태우고, 쇠약하게하며, 끓여죽이고, 채찍으로 치고, 가죽을 벗기고, 산 채로 매장해 죽일 것이다” (New World Religion에 게재된 ‘예수회의 최종적인 선서와 입단식’Oath of the Jesuits 내용 중에서).

제수이트의 반종교개혁운동
이와 같은 정신으로 무장한 제수이트가 종교개혁의 현장에서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저지른 끔찍한 사건들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두려울 만큼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것이었다. 종교전쟁을 일으켜 독일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고 정치를 무력화 시키고 정신적인 타락과 도덕적 부패를 초래하였고 이로 인한 인구 감소와 함께 나라가 황폐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제수이트가 국민의 1/7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켰고, 1572년에는 성 바돌로매 축일에 개신교도들의 대학살을 주동하였다. 축일 전날 밤의 종소리를 신호로 하여 그곳에 모여들었던 위그노(프랑스의 개신교도들)들 무차별 공격하여 죽이기 시작하였다. 파리에서의 위그노 학살은 7일간 계속되었는데, 처음 3일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잔인하였다. 그런데 그 학살 사건은 파리 시내를 넘어 신교도들이 거주하는 모든 도시와 촌락으로 확대되어 남녀노소 불문하고 어린아이, 노인, 농부들 귀족들에 이르기까지 무차별 살해하는 대살륙이 2개월동안 자행되었다. 국가의 귀중한 인적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유망한 인재들을 포함하여 7만 여 명이 떼죽음을 당하는 전대미문의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로마 교황청은 매우 기뻐하였고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축하 행렬이 이어졌고 그 대학살을 기념하는 메달이 주조되었고 기념벽화도 그려졌다.
이 외에도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위스, 폴란드, 영국, 아일랜드 등 유럽 각지에서 제수이트는 집요하게 그 세력을 확장하면서 개신교도들을 위협하였고 수많은 인명을 파리 목숨처럼 쉽게 살해하였다.  

제수이트의 선교활동
제수이트는 단지 교황의 권위를 세우면서 개신교도들을 박해하는 일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다. 세계 각처에 진출하여 그들이 전개한 천주교 선교활동도 대단히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교도를 천주교로 개종시키는 것도 제수이트의 매우 중요한 사명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선교지역을 과감하게 해외로 확장하여 동양권에 포교하는 일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특히 이그나시우스의 절친한 친구였던 프란시스 싸비에르(Francis Xavier)는 아시아대륙 선교의 선구자였다.
싸비에르는 인도로부터 시작하여 일본, 중국에까지 진출하여 천주교 선교에 목숨을 걸고 헌신한 백절불굴의 투사였다. 동양권의 천주교 포교에서 그가 큰 업적을 남긴 것은 아니었으나 그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서 후일에 천주교 선교가 확장된 것은 사실이다.
얼마 후 제수이트는 아시아 보다는 활동하기가 훨씬 수월한 한 대륙을 발견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아메리카 대륙이다. 특히 중미와 남미에서 제수이트의 선교활동은 매우 적극적이었고 무력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살륙하면서까지 포교활동을 전개하여 중남미 대륙을 가톨릭화 시키는 일에 성공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제수이트는 목적 달성을 위하여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유럽에서는 종교개혁 세력을 박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약 5000만 명 이상을 살해하였고 중남미에서는 포교하는 과정에서 그 이상의 사람들을 죽였다.(조인선, 기독교 죄악사, 상권, 320,332).
이러한 전력을 가진 제수이트는 지금도 2만 여명의 회원들이 세계 각처에서 정치계, 종교계, 경제계, 언론계, 과학계, 교육계 등 각 분야에 침투하여 조직적이고 집요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전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여 통치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으며, 그것은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예수회의 두 가지 최종 목적이 있는데 그 첫 번째 목표는 세계정치권력의 장악이며, 두 번째 목표는 세계종교의 통합이다. … 그들은 지금 막강한 권력, 세계적인 조직망, 정밀한 정보, 막대한 금력을 가지고 마치 첩보기관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전략을 사용하여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을 장악하고 세계의 종교들을 가톨릭 안에 묶는 일을 줄기차게 진행하고 있다.”(마지막 신호, 209, 225).
향후 언젠가는 제수이트를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의 세력이 세계를 장악하여 통제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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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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