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
2014-11-21 14:05 l 교회연합기자 epnnews@empal.com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 hauer, 1788-1860)가 그의 나이 63세가 되던 해에 쓴 <인생론 집>에 다음과 같은 우화를 실었다.  
어느 추운 겨울 아침, 추위에 언 고슴도치 부부가 체온으로 서로를 덥혀보려고 가까이 다가선다. 그러나 그들 부부가 가까이 다가설수록 자신들의 가시로 인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었다. 고슴도치 부부는 다가갔다가는 떨어지기를 반복한 끝에, 어느 정도 따뜻하지만 지나치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도 될 가장 적당한 거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인간관계도 너무 가까워지면 상처입고, 너무 떨어져 지내면 외톨이가 되므로 고슴도치 딜레마에 빠진다. 그러니까 고슴도치의 딜레마란 “자신의 자립”과 “상대와의 일체감”이라는 두 욕구에서 오는 딜레마를 아주 잘 설명한 우화로 자주 인용되고 있는 데.  
냉소적인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그 글에서 ‘정신적으로 탁월한 인간일수록 사교적이지 못한 법이고, 속이 비어있는 평범한 인간은 그 반대라는 취지’로 고슴도치 딜레마를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비사교성은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남다른 정신 때문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죄 없는 고슴도치 부부를 끌어드린 셈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가 이렇게도 흥미진진한 자료를 내버려두었을 리가 없다. 그럴듯하게 다듬어서는 자신의 저서 <집단 심리학과 자아분석(Group Psychology and the Analysis of the Ego)>에 내놓았다.  
프로이드는 부부, 부모와 자식, 남녀와 같은 인간관계에서, 서로가 친해지고 가까워지면 질수록 이해관계도 밀접해지고 두 사람의 에고이즘, 즉 고슴도치의 가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어, 마침내는 서로 미워하고 다투는 감정도 더해간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프로이드는 이 고슴도치의 비유로서 심리적인 거리가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사랑과 미움이 서로 상반하는 마음의 갈등(ambivalence)이 더해지는 인간심리를 분석한 것이다.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인간관계, 즉 혼인, 우정, 부모와 자식 관계와 같은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에는 ‘혐오(aversion)와 적대(hostility)의 감정의 찌꺼기’가 존재한다며,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은 억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감정이 발생하지 않는 관계는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밖에 없다고 보면서도, 그 이유는 나르시시즘 때문이라고도 풀이한다. 알만한 이야기를 까다롭게 만들어놓는 그의 재간을 다시 경험하게 하는 것 같아 흥미롭다.   
또 있다. 이번에는 문학적인 해석이라 보는 것이 좋을 성싶다. 고슴도치 딜레마를 연출하는 드라마에서, 자신에게 불편을 느끼게 하던 상대방이 어떤 계기로 해서 자신으로부터 사라지게 될 경우를 상정해보자는 것. 소위 대상상실 드라마에서는 서로에게 향하고 있던 미움이나 상처에 대한 추억이 자책감과 죄의식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모양으로 말이다. 후회와 보상의 심리라 했던가.
대상과 서로 연결되어 있을 동안에는 “왜 이런 저런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을 해버린 것일까?” “좀 더 잘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왜 그런 모진 짓을 했던가.”하며 자신이 상대에게 취했던 자세와 언동을 뉘우치는 심리가 발생한다는 것.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자기중심적인 에고이즘을 발휘해서 상대방을 희생시키고 있었던 인간이 상대와 헤어지고 난 연후에야 그랬던 일을 후회하고 보상해보려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부활>에서 갑(甲)의 위치에 있던 네플류도프는 아무런 죄의식이 없이 을(乙)인 카추샤를 유혹해서 제멋대로 농락하고 버린다. 그 결과 그녀는 창녀로 전락하게 되는데, 우리의 주인공은 훗날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강한 양심의 가책을 품게 되어 카추샤에게 보상할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의 가슴에 남아있던 카추샤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되살려보려는 네플류도프의 부활의 염원도 알고 보면 고슴도치 딜레마의 뒤풀이 라는 것이다.
<부활>과 같은 로맨티스트들의 드라마, 그러니까 갑의 자리를 확보한 한 고슴도치가 을에게 ‘너의 가시가 나를 아프게 하니 네 가시를 몽땅 뽑아버려야 한다.’하고 떼를 쓰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렇게라도 아름답게 다듬어주어야겠다는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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