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데모나의 손수건
2014-12-11 17:28 l 교회연합기자 epnnews@empal.com

데스데모나의 손수건


“장군님, 질투를 조심해야 합니다. 질투란 녹색의 눈을 가진 괴물이랍니다.”
오텔로를 질투의 화덕 속에 던져 넣기 위해서 이아고가 오텔로에게 일러준 말은 질투에 대한 경고의 말이었다. 질투의 무서움을 일러주기 위해서 이아고는 ‘녹색’이니 ‘괴물’이니 하는 시각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어휘를 동원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질투는 고약한 괴물이라는 경고를 하는 척하면서 은근히 질투의 불씨를 심어주려 하는 이아고의 교묘한 심리 조작법의 첫 단추였다.      
인간을 질투라는 광란 속에 밀어 넣기 위해서 먼저 질투가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를 철저하게 머릿속에 각인시켜 두는 작업으로 시작한 것이다. 이아고는 그 작업만 성공하면 질투는 불안해하는 인간의 심리를 먹이로 해서 스스로 증식하기 마련이란 것을 훤히 꿰고 있는 위인이었기에.  
우직한 오텔로는 이 간계에 너무나 쉽게 떨어지고 만다. 아내 데스데모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질투의 화염이 옮겨 붙으면서 녹색의 눈을 가진 괴물이 멋대로 주무를 수 있는 쇠붙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이아고의 역할을 맡아나서는 명사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풍설이나 찌라시 수준의 이아고가 있는가 하면, 공개적인 매체에 등장해서는 자신만이 알고 있다는 그럴듯한 정보를 미사여구로 포장해서 그렇지 않아도 불안해 하고 있는 대중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이아고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전에는 나름대로 건전한 논법을 구사하던 인사들조차 이런 풍조에 물들어가는 기미가 보이는가 하면, 설교꾼들도 한 몫 거들고 나서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대중은 그들이 자신이 뭘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선동꾼이란 것을 훤히 알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녹색의 눈을 가진 괴물의 술수에 말려들기 일쑤.       
셰익스피어는 이아고의 아내 이밀리아의 입을 빌어 말한다. “질투란 뭣이 있어서 질투하는 것은 아닙니다. 질투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기에 질투한답니다. 질투란 제김에 포태해서 저절로 분만되는 도깨비랍니다.”
마침내 오텔로는 아내의 부정을 증명하는 증거를 찾아 혈안이 된다. 이아고의 멱살을 잡고 증거를 보여 달라 조른다. “나는 그 증거를 갖고 싶단 말이야!” 장군의 체통도 잊은 채 소리소리 지른다.
그럴수록 이아고는 그럴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오텔로를 가지고 논다. “흥, 공기처럼 가벼운 것이라도 질투에 미친 녀석에게는 성경 말씀처럼 무게가 있는 법이거든!” 그러나 오텔로는 기어이 공기보다 가벼운 한 장의 손수건을 부정의 증거로 내걸고 아내의 목을 졸라 죽이는 비극을 향해 내달린다.    
러시아의 작가 미하일 페트로비치 알치바셰프(1878-1927)는 그의 단편 <질투에 대해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벽 이래로 인간은 질투라는 고통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죽이고 있다…그 어떤 뛰어난 고문 꾼인들 질투보다 더 미묘하고 날카로운 고통을 생각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질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내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왜 오텔로는 데스데모나의 목을 졸랐을까. 그는 대답한다. 그것은 질투가 아니라 데스데모나에 대한 신앙이 파멸했기 때문이라고.  
프로이트는 질투를 (1) 경쟁적 질투, (2) 투사된 질투, (3) 망상적 질투로 분류하고, 이 셋이 무의식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면서도, “투사된 질투”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질투란, 남여 할 것 없이, 자신이 저질은 과오나 억압되어 있는 충동을 남에게 전가한 것일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이미 자신이 저질은 과오나 저지르고 싶은 충동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상대방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질투라는 것, 요컨대, 자신을 상대방에게 투영해서 그 그늘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질투라는 것이다.
돌을 들고 음행한 여인을 둘러선 군중들에게, 누구든지 죄 없는 자부터 이 여인을 돌로 치라한 예수의 말씀과 상통하는 해석이 아닐까 싶다.     
셰익스피어의 <오텔로>는 공기보다 가벼운 한 장의 손수건으로 해서 데스데모나와 오텔로와 이아고가 모두 죽음을 맞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한 해가 가고 있다. 이제 내걸은 손수건은 걷어 내리고 움켜쥔 돌멩이는 내려놓자. 그리고 새해를 맞자.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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