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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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의 승리와 비극>의 저자 츠바이크가 썼다. “그는 죽었다. 홀로 외롭게...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에게는 독립과 자유가 있었다.”
에라스무스가 생애를 바쳐 지키려 했던 것은 한 마디로 자유, 그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였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그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아부나 흥정마저 마다하지 않았고, 동정심을 버리고도 후회하지 않았다. 호이징거가 말한 것처럼 그가 미워한 것은 “절대적인 확신”, 확신이 절대와 어울리면 광신이 되는 것을.
에라스무스가 가톨릭 쪽에도 프로테스탄트 쪽에도 편을 들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 할 수 있지만, 내심 개혁자 루터의 항거에 상당한 공감을 지녔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랬던 그로 하여금 루터를 멀리하게 한 것은 바로 루터의 “격정”과 “거침” 그리고 개혁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절대적 확신”이었다. 에라스무스는 하나님 말고 그 무엇에도 절대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다. 정의라고 생각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인간의 어떤 의견, 어떤 주장도 결코 절대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신을 포함해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다 같이 내세우는 예수는, 세리의 부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지만 이해하려 했고, 바리새인들의 정의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인정하고 있는 터였지만 그들 편에 서지는 않지 않았느냐”면서.
<르네상스 정신사>의 저자 드레스덴은 말했다. “에라스무스와 동 시대 사람들 중에는 ‘그가 가면을 쓰고 있는 무신론자’라고 믿는 이들이 있었는가하면, 다른 편에서는 ‘너무나 비겁해서 루터가 개척한 길에 뛰어들 수 없었다.’하고 비난하기도 했다.”
논쟁을 싫어하고 독선을 미워해서 격정에 휘말리기를 싫어한 에라스무스는 차라리 인간의 어리석음에 눈을 돌렸다. 인간본성의 어리석음을 한껏 비꼰 작품이 <우신예찬>이다.  
로테르담의 데지데리우스 에라스무스(1466-1536)가 <우신예찬>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1509년 여름, 이탈리아를 떠나 영국으로 가고자 말 등에 흔들리면서였다. 당시 이탈리아는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용병을 모아 볼로냐를 공격하고 있었고, 성직자들은 부패와 타락에 파묻혀있었다. 그러나 영국에는 그를 맞아줄 친구 토마스 모아가 있을 것. 모아를 생각하며 그와 대화하듯 <우신예찬>을 엮어간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원수인 “우신(어리석은 여신)”모리아는 모아의 라틴어 이름 모르스에서 따왔다나.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어리석음이 넘치고 있는지를, 속속들이 바보 여신 모리아의 입으로 고발한다. 철학자와 신학자의 되지 못한 논쟁, 군주와 신하들의 공명심,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들의 위선, 그리고 가장 큰 바보짓인 전쟁, 이 모두는 바보 신의 승리의 결과라고 서술한다.   
우신은 이죽거린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 그런데 그 생명은 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생겨날 수 는 없지 않는가?... 신들이나 인간은 도대체 어디에서 태어나는가?... 머리에서도 가슴에서도 아니지 않는가. 차마 웃지 않고는 입을 뗄 수 없는 기관을 통해서가 아니던가...” 우신 모리아는 인간의 부조리를 두고 우스꽝스럽게 너스레를 떤다.
우신에게는 많은 젊은 처녀들이 시중들고 있다. “자만” “추종” “망각” “게으름” “열락” “무사고(無思考)” “방탕” “탐식” “잠꾸러기”가 그녀들의 이름. 이들의 도움으로 인간세계에 행복을 뿌려 주고 있는 것이 자신이라며 우신은 힘자랑을 늘여 놓는다.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철저하게 폭로한다.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노라면, 인간은 잘난 척 하거나 그럴듯한 표정을 지어보이거나 현명한 척 해보았자 결국은 웃음꺼리가 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또 한 살을 보태는 마당에, 찔끔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을 떠올리는 것은, 나이 들수록 더 바보스러워지는 자신의 모습 때문인지도 모른다. 에라스무스가 동경했던 자유 말고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하고 끄덕이면서도, 그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 터라, ‘에라’하고 에라스무스가 소중하게 여기던 “너그러움”에나 기대어보자 한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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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愚神禮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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