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진리는 죽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지켜내려고 합니다. 따라서 진리도 많은 사람에게 공감되는 진실로 인정받아야 바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때론 진리가 다수로부터 인정을 받는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나는 베이비 부머 세대입니다. 이 땅의 베이비 부머들은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젊었을 적에는 민주화와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고, 해마다 봄과 가을에 연례 행사처럼 치러지는 위수령 등으로 인하여 강의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레포트 제출로 학점을 받아야 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교수들이 삼사십 년간 연구 결과물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적었고, 개인의 학문적인 체계도 개인이 도서관에서 일일이 자료를 찾아 챙겨서 정리해야 할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대학 4년 동안 배운 것이 직장 생활을 하는데 평생 유용하여야 할 터인데, 민주화를 이루느라 대학 강의를 직접 듣는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 보니 아쉬움이 남을 때가 많은 것입니다. 한때 대학 교문을 군인들이 지키고 있던 때가 있어서 대학물을 적게 먹긴 하였지만, 우리들의 젊은 날은 결코 헛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부조리한 현실을 타개하려는 몸짓은 그 나름대로 의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 데모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유신 철폐를 위한 데모가 있으니 B탑 앞으로 모이세요.”
총학생회 임원인 K가 여러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외쳤습니다.
“나가자.”
과 대표인 희찬의 외침과 함께 우리들은 가방을 챙겼습니다. 학교 중앙에 있는 B탑 앞에는 이십여 명 정도가 모여 있었고,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우리는 탑 앞으로 가서 모여 있던 학생들과 합류하였습니다. K가 4열 종대로 스크럼을 짜서 돌자고 해서 “유신 철폐 민주 수호”를 외치며 다섯 바퀴를 돌자, 어느새 탑 앞에 모인 학생 수는 수백 명을 헤아렸습니다. 주요 일간지 완장을 찬 기자들이 탑 앞으로 속속들이 모여들어 데모 현장 사진을 부지런히 찍고 있었습니다.
“유신 철폐, 민주 수호”
“유신 철폐, 민주 수호”
라는 외침이 남산 중턱을 넘어설 듯이 커졌습니다. 이제 학생들은 장충단 공원이 있는 정문쪽으로 나아갔습니다. 학생들은 8열 종대로 질서정연하게 행진하였습니다. 그러자 교문이 닫히고 자물쇠가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교문 앞에는 경찰들이 빽빽이 막아섰습니다. 누군가가 일단 앉자고 소리쳤습니다. 학생들은 차분히 앉아 다음 행동을 준비하였습니다. 따가운 초여름의 햇살이 우리들의 이마와 등에 내리꽂히자, 수학교육과의 강**가 큰 주전자에 물을 담아와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우리 과 여학생 감**이 유신 체제의 부당성을 적은 원고를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십여 명의 학생이 운동장에서 끌고 온 농구대를 교문에 밀어붙이며 밖으로 나갈 통로를 확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학생들이 길거리로 질주하였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고, 최루탄 냄새가 눈과 코를 찔렀습니다. 산소 마스크를 쓴 기자들이 팔을 더 높게 쳐들라고 하였고, 대열 앞에 서 있던 나와 우리 과 학생들은 팔을 높이 쳐들며 “유신 철폐, 민주 수호”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기자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대었습니다.
데모가 있은 지 일주일 후, 사범대학 건물 현관 게시판에는 붓글씨로 쓴 공고가 나붙었습니다.
‘교육학과 정** 제적
수학교육과 강** 자퇴’
우리들은 황당하였습니다. 단지 정**은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데모 소식을 알리고, 데모 학생들에게 물을 떠다 준 일밖에 없는데, 두 사람의 얼굴이 그 후로 학교에서 안 보였습니다. 며칠 후에야 나는 정**가 군대에 가게 되었고, 강**이 형사들의 강요에 의해서 자퇴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데모 현장이 한교 정문 옆에 있는 A호텔 빌딩 옥상에서 누군가에 의해 상세히 비디오로 촬영되었고, 그 때문에 한때 직장을 잡기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여 보아도, 내 안에 있던 숨겨진 진실은 결코 죽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요즘 문단의 어떠한 모임에 가서도 불의와 부조리를 용납하지 않고 돌직구를 날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젊었을 적에 가졌던 용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될 만큼 한국인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보물입니다. 그 실록이 나오기까지에는 사관들의 목숨을 걸고 쓴 사초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관들은 그 실록을 쓰고 나면 사초를 물에 씻어 지워버렸습니다. 나는 젊었을 적에 내가 가졌던 진실을 향한 용기가 지금도 내 가슴에서 용트림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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