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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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사회적동물이다. 다른 말로하면 관계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서로가 이해타산 적이거나 상대로부터 무엇인가를 얻고자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들, 한미의 전략적 무기들의 총출동들은 서로의 이익이 전제되어 있다.
한미일의 공조체제와 유엔의 북한에 대한 경제적 압박의 강화 현상들은 북에 대한 보다 더 강한 생존방어 능력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고 한반도의 긴장조성은 커져만 갔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는 평창동계 올림픽을 하나의 기회로 삼고 평화적 제스처의 전략을 구상 발표하게된 것이 사실이다. 수년 동안 남북은 핵 핵 거리며 한반도의 땅과 하는ㄹ 바다에는 미국의 최첨단무기들이 가득하였다. 북은 자존을 위해서 핵실험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미국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패권을 보존하고 새로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와 함께 일본을 부추겨서 러시아와 중국을 경계하는 것이다.
뉴스 매체의 거의가 매일 전쟁 위기를 보도하고 남북 갈등과 남남 갈등을 조장한다. 이 중심에 소위 가짜 보수를 자처하는 교회와 기독교가 자리하고 있다. 기독교 인구가 얼마이든 남한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성장과 함께 진정한 민족과 나라 살리는 역사적 행보 보다는 오히려 반역사의 자리에서 반통일적 역할의 핵심세력이 되고 있다. 어찌 되었든 평창은 남북의 새로운 만남의 전기가 되고 문화 체육의 교류 등이 교차되는 형국이다. 평창 올림픽 이후를 염려할 것은 없다.
한반도의 분단은 세계사적 분단인 것을 출발로 하였기에 그 숙제를 푸는 것 역시 우리만의 힘으로 안 된다는 것쯤은 누구나 짐작하는 바이다. 그러나 부부 간의 문제를 외부에서 상담한다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남북문제도 그러하다. 6자회담 4자회담 등 주변 국가들로부터의 협력을 끌어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역시 당사자 간의 문제이다.
우리가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남북은 유엔에서 인정한 각각의 나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대화의 시작이다. 그것은 역사적 필연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힘으로 한반도의 문제를 풀려고 하였다. 그러나 강제적 무력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한반도 분단의 현실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힘을 전면에 내세울수록 평화의 기반은 깨어지고 긴장과 전쟁의 분위기는 떠날 길이 없다.
모든 관계는 신뢰 위에서 발전한다. 신리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약속한 것들을 지켜 나갈 때 조성되고 형성된다. 일반적인 협박이나 억압적 굴종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다. 모든 관계는 이러한 신뢰가 기반이 되고 이것을 바탕으로 발전해 간다. 남북한 당사자들은 이러한 신뢰구축을 위해서 작은 약속이라도 지켜가며 관계를 다져가야 한다.
서로를 불신하는 믿음이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은총의 믿음과 정의의 바탕 위에서 사랑의 열매가 맺어진다는 믿음을 구체화 하고 육화시키는 실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세상은 변화무쌍하고 흔들리며 배신과 갈등이 난무한다. 이러한 삶의 현장을 바라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한 순간도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구가할 수 없다. 제천 참사와 밀양참사가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천하보다 귀하다는 예수님의 한 생명에 대한 말씀이 귓전을 때린다. 생명은 엄격히 말하여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내 몸의 정자와 난자가 합쳐진 것이라고 하여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창조주가 모든 만물을 만들은 우주와 같이 한 생명 속에 하나의 우주가 담겨져 있다. 그 각자의 우주를 소홀히 한다면 인간의 미래는 희망을 기대하기 어렵다. 4차 산업( AI 인공지능) 알파고 로봇과 빅데이터의 물결이 친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생명은 하나의 우주로서 존재한다.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뿐 아니라 사회학적이고 정치학적인 구조 악으로부터 오는 죽음들이 널려 있다. 인간들의 탐욕으로부터 일어나는 전쟁들의 범죄와 죽음들, 거짓과 불의로부터 일어나는 죽음들, 허물과 약함으로 일어나는 실존적 죽음들까지 죽음의 행태나 모양도 여러 가지이다. 이 모든 것들 중에 가장 악한 것은 공권력으로부터 자행되는 죽음의 폭력들이다. 그것의 극치가 전쟁이다. 소위 문명을 추구해 온 인간들의 죽음의 무기들은 한 순간에 우리가 사는 삶의 터전들은 태워버리고 흔적도 없게 할 수 있다. 우리의 종말에 대한 내일에 대한 예견은 아무도 할 수 없다. 이러한 불행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서로가 믿고 살 수 있는 신뢰의 터를 쌓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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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뢰회복이 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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