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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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 아시아의 나라들은 집집마다 우상을 놓고 붉은 불을 켜놓고 그 신에 매달리는 것처럼 우상으로 만든 하나님을 섬기면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당을 신당으로 만드는 것이 목회라고 생각하기에 시설비로부터 운영비까지 감당할 수 없는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양아들을 관리하고 돈으로 치부하는 교주가 되고 헤아릴 수 없는 프로그램의 사슬로 꼭꼭 묶는 일이 성공적 목회라고 합니다. 신당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신에 잡힌 사람이 신 굿으로 악령의 힘을 돋워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처럼은 이런 과정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 어디나 하늘나라적 삶으로 자유롭게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창조주로 무소 부재하신 우주공간 하나님의 창조 하심 그 자체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믿음의 의미를 상대적인 일반 종교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는 우리와 함께하심에 귀중성이 믿음이란 원리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이란 집합체인 교회 개념에 신당개념에서 못 벗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교회당 개념인 회당에서 믿는 자가 다 함께 모이는 마가의 다락방의 형태가 사람들이 휘장을 치고 제단을 만들고 한 곳으로 집중하도록 조명을 비추고 교주들처럼 가운에 부적을 붙이고 유유히 등장하여 거드름을 피우는 절대자의 무대가 목사가 만든 것들입니다.
번쩍이는 강대상, 성찬상, 십자가상, 큰 성경을 펴놓음, 촛불, 값비싼 꽃으로 장식하고 파이프 오르간과 피아노와 각종 장식들과 도구들이 교주들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우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 도구를 성구라고 하는 자체가 타락한 로마가톨릭이나 동방교가 이미 심판되어진 것을 개혁주의라고 하는 사람들이 보수라는 신학으로 문 닫고 믿는 귀신의 제단을 우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망령되어 일컬음에 대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내세워 하나님을 모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거짓 맹세입니다.
‘망 령되이’라는 말은 들추는 것이나 치켜드는 것이나 위로 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세’라는 주제로 그럴듯한 찬양이나 우리의 기도나 하나님의 이름을 미사어구가 있는 대로 끄집어 내어 기도하는 것들은 하나님께 영광된 모습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시편이나 구약의 용어들은 구속사역이 이루기 전 성막과 성전이라는 상황은 하나님과 우리와 하나 될 수 없는 객관적 상태였을 때의 용어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성소라는 휘장에 의해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요한복음 19장 30절 이후에서는 그 용어의 실체 속에 우리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실 자체를 출애굽한 선택된 사람들에게 주신 최초의 복이었습니다. 너희가 만든 올무나 의식의 무용성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정성과 열심을 다하는 찬양의 용어 자체의 의미를 알아야 했습니다.
‘망령되이’란 거짓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에 감람산에서 종말에 관한 설교를 통해 ‘큰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많은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날 것임을 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마 24:24, 막 13:22).
교회 역사를 보면 A. D.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바로 전 전율할 만큼 혼란했던 여러 해 동안 이러한 인물들이 나타나서 자신들이 종교적 구원자이며 종말이 임박했음을 선포했던 때가 있었으며, 헬라 시대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모방하고 믿는 자들을 미혹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이 시대마다 “양의 옷을 입고 나오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마 7:15)인 그런 사람들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그럴듯한 용어들이 얼마 난 가증스러운 것인가?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명품같이 보이는 짝퉁인지, 진짜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용어들입니다.
 사랑이란 말, 감사하는 말, 진심 어린 말, 교회 강단에서 쏟아지는 말들,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 찬양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아름다운 말들, 기도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들, 모두가 진심이었다면 그런 매끈하게 미끄러지듯 쏟아버리는 용어보다는 침묵의 삶이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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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쉬운 것이다·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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