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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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크리스천에게서 발견한 색다른 점은 바로 섬기는 자의 행복이었다. 한 번은 어느 선교 단체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 사람들은 먼저 입회한 사람들이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정성들여 섬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나는 문학 단체 임원을 하면서 섬기는 일을 주로 하였다. 예를 들면 사무국장이 궂은 일을 하고 있으면 나도 함께 거들면서 도왔다. 이를 본 지인들이 “주간님이 왜 그런 일을 하세요.”하고 말려도 나는 개의치 않고 열심히 궂은 일을 하였다. 후에 임원을 그만두면서 회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내가 궂은 일을 도맡아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내가 한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예수님은 신의 위치에서 낮은 곳에 임하셔서 가난한 자, 병든 자와 함께 하셨는데, 낮은 곳에서 섬기는 것도 행복이지요.” 나는 이 비결을 예수 그리스도를 비롯하여 여호수아 옆에 있던 갈렙, 바울 옆에 있던 바나바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유교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체면을 매우 중시하는 편이다. 가난해도 가난한 티를 내지 않고 군자의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선비들이 많았다. 개인의 덕을 중시하는 반면에 이웃과 어려움을 외면하였고, 선비로서의 인품에 맞지 않는다며 농공상을 천하게 여긴 적도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선교사들을 통하여 이웃의 어려움을 헌신적으로 돕는 일이 많아졌다. 오늘날 3만 명 이상의 선교사들이 해외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섬기는 일을 가르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본받아서일 것이다. 사실 인간에게는 자존감도 있는 반면에, 섬기는 마음도 가슴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나는 이와 같은 섬기는 마음이 인간 모두에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발자크의 <사라진>(1830)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어느 날 밤, 란티 가문의 대저택 안에서는 파티가 열리고 있는데, 마담 란티의  딸 마리아니나가 지독히 늙고 추한 모습의 노인을 앞세우고 나타난다. 그들 앞에는 미모의 여성 아도니스의 초상화가 있다.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림의 사연은 이렇다.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난 사라진은 공부 시간에 선생의 모습을 벽에 그려 놓기 일쑤였고 예배 시간에는 괴상한 조각을 새기곤 하였다. 그의 예술적 재능과 폭발적 열정은 마침내 파리에서 유명한 스승을 통해 갈고 닦여 22세에 대상을 받고 로마로 유학을 가게 된다. 조각만이 삶의 모든 것이었기에 세상사나 사교에는 어두웠던 사라진이 로마의 어느 극장에서 쟘비넬라의 노래를 듣게 되는 것은 그의 운명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한다. 그녀의 미모는 조각가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이상이었고 그녀의 노래는 예술가의 열정에 기름을 붓는 신비 그 자체였다. ‘그녀의 사랑을 얻든지, 아니면 죽으리라!’ 고통과 기쁨이 교차되는 열정으로 그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 속에서 수없이 그려내며 조각으로 새긴다.
매일 극장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쟘비넬라의 모습과 노래에 도취되던 사라진의 열정은 드디어 인정을 받은 듯, 그는 그녀의 파티에 초대된다. 그날 밤 사라진의 구애를 거절하는 쟘비넬라의 말과 행동은 역설적으로 더욱 그를 자극한다. 그녀를 납치할 계획을 세운 사라진에게는 로마 왕자가 귀띔하는 진실조차 귀에서 멀었다. 그녀는 여자 역할을 하도록 길러진 거세된 남자 배우라는 것이다. 납치한 쟘비넬라의 입에서 사라진은 처음의 만남이 그의 순진성을 놀려 주려 한 주위 사람들의 계획에 그녀가 동의한 데서 비롯되었음을 듣는다. 절망 속에서 그는 그녀의 동상을 쳤으나 실패했고 다시 그녀를 죽이려 할 때 후견인이 보낸 잠복자들에 의해 살해된다.
사라진이 죽자 쟘비넬라의 후견인은 그녀의 동상을 가져다 대리석에 새겼다. 란티 가문은 화가 비엔으로 하여금 그것을 다시 본떠서 아도니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다. 쟘비넬라는 바로 현재는 늙고 추한 모습으로 변하여 ‘아도니스의 초상화’를 파티에 들고 나온 노인과 동일인이었다.
생각해 보자. 한때 미모를 갖추고 있던 여장 남자는 나이가 들자 늙고 추한 모습의 노인이 되었다. 개인에게는 아름다운 미모를 뽐내던 때도 있고, 늙어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 싫을 때도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아름답고 멋진 행동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섬겨야 할 일들이 많이 있다. 가족과 이웃을 배려하고 섬기는 일부터 시작하여 단체 활동이나 친목회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섬기는 일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는 더욱 멋있어 질 것이다. 나아가 북한 땅에서도 권력을 가진 자들이 백성을 섬기고 세계인을 이웃으로 생각하는 멋있는 일이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이 일이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심으로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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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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