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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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여호와의 궤를 맨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사무엘하> 6: 12-15).
‘여호와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실재實在이다. 웃사라는 사람은 그 궤를 옮기던 중 소들이 뛰므로 손을 들어 궤를 붙들었다가 그만 죽고 만다. 이 때문에 다윗은 궤를 쉽게 옮기지 못하다가, 오벧에돔의 집이 여호와의 궤로 말미암아 복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다윗 성으로 옮기고자 하였다. 그때에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 그만큼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데서 오는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아내 미갈이 어찌 왕으로서의 품위를 못 지키느냐고 나무래도,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세우셨으니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한다고 말하였다. 이를 보면 하나님의 궤 앞에서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복을 받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태도를 가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십자가는 죄인이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을 의롭다 칭하시고 구원의 길에 나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주님은 십자가 고통을 당하신 후 소멸된 존재가 아니라 성령이 되어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시켜 주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잘못 알고 있는 일부 성직자들은 “성령을 받으라”며 주님을 도구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성령은 성직자에게만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 모두에게 오셔서 동행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많은 성직자들은 신자들을 죄의 굴레에 묶어 두고 있다. 주님이 우리를 죄의 사슬에서 풀어 주고 의인으로 칭하시며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다는 사실은 설교의 틀 밖에 둔 채, ‘너희는 죄인이니 회개하고 복 받으라’는 기복 신앙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말라기> 3장 10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여기서 “복”은 물질적인 축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달란트의 축복도 있다. 예수님이 오실 당시 1달란트는 직장인 봉급 16년 9개월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는 행복을 수용할 능력 뿐만 아니라 영적인 축복을 다 포괄하여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성령이 찾아오셔서 영적&#8228;정신적&#8228;육체적&#8228;물리적 행복을 주시겠다는 것이 ‘복’의 개념이다. 그러나 많은 교인들이 복을 물질적 축복만으로 한정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일부 성직자가 대형 교회 성전을 건축하다가 많은 부채를 짊어지며 시행착오를 겪는 것도 교인들을 물질적 축복에만 갇혀 있게 하여 생긴 결과이다.
그러나 주님은 율법과 물질의 테두리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다. 부와 권력을 가진 교인들에게만 함께 하시는 분이 아니다. 주님은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억압받는 자, 병든 자 등 하나님의 자녀에게 함께 하시는 분이다. 그 자녀가 행복하기를 원하시고 아름답고 멋있게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주님은 그 자녀와 함께 동행하시는데, 이를 알아 보는 시선을 못 가진 이들도 많이 있다. <역대상> 4장 10절을 보자.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그러므로 신자가 구해야 할 것은 “나의 지역”을 넓히는 것이다. 성령은 성직자에게만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모두에게 오신다. 이를 알아 보기 위해서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을 보는 믿음과 시선을 가지는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세기> 13:14-17). 이제 우리의 눈을 들어 보자. 주님이 우리 옆에 계시는데 멀리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여 보자.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다윗처럼 배꼽을 드러내 놓고 춤을 추고 싶지 않는가. “하나님, 저 예뻐요?” 하며 찬양을 부르고 싶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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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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