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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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린다. 주님. 저의 개인적인 기도보다는 주님이 저에게 두신 뜻을 아는 기도가 되게 하소서. 저의 개인적인 소망보다는 주님이 원하시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이 땅의 교인들은 너무 물질적인 데 소망을 두고 살아 왔나이다. 강남의 아파트와 고급 승용차와 맛있는 요리와 멋있는 여행에 관심을 두고 살아왔나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주님이 내린 축복으로 착각하였나이다. 그러나 주님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게 아니었나이다. 말구유에 나시었고,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의 이웃이셨나이다. 주님은 집 한 칸 없이 하늘을 천장으로 삼고 겟세마네 동산을 기도처로 삼으셨으며, 갈릴리 호수 주변을 선교지로 택하셨나이다. 구약에서 예언한 땅, 이스라엘에서 가장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죄를 벗어나서 의인으로 칭함받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녀로 회복시켜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 스승을 잃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동행하셨고, 마가의 다락방에 다시 찾아오셨으며, 성령이 그 자녀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렇다. 주님은 분명 하나님의 자녀에게 찾아오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착각한다. 대형 예배당을 건축하고 유명 목사가 자신의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하는 것이 주님의 참모습인가. 나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루터가 500년 전에 내걸었던 선언문이 다시 내걸리기를 기원한다. 그리하여 많은 신자들이 주님의 참모습을 보기를 기원한다.  
주님은 대제사장이 종교적 권력을 휘두르는 시기에 오셔서 병들고 가난한 자, 약한 자, 소외된 자의 편에서 치유와 위로의 손길을 내미셨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마가복음> 12:13-17). 이는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한 모티프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하나님 나라와 의를 믿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세상 권력과 부에 있지 아니하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성직자들이 세상 것인 것에 집착해 있다. 총회장이 되려 하고, 권력이 있는 자 앞에 줄을 서고, 위정자들처럼 돈 선거를 치르기도 한다. 권력의 집중과 물질적 풍요에 대한 욕망은 ‘가이사’의 것에 기울어 있는 형태이다. 예수님의 참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예수님은 변변한 집 한 채 없으셨고, 제자들도 자신이 살던 거처를 떠나서 주님을 따랐다. 주님은 따로 예배당도 세우지 않으셨다. 갈릴리 해변과 호수가 설교 장소였고, 겟세마네 동산이 기도처였다. 그런 가운데서 복음이 퍼져나갔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의 대형화와 목사 세습은 ‘가이사’의 흉내를 낸 것이지, 주님께 대한 참된 예배의 자세가 아닐 것이다. 예수님은 성전 제사를 책임진 대제사장의 편에 서지 않으시고 병들고 약하고 소외된 자의 편에서 일하셨다. 마찬가지로 종교 개혁 이후의 청교도들은 로마 교황처럼 화려한 예배당에서 예배드리기보다는 마을 안에 예배당을 짓고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꼭 대형 교회에서 드려야만 주님이 받으시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형 교회는 작은 교회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농어촌과 도시의 변두리에 있는 개척 교회를 지원하고 부목사들이 교회를 개척해 나가면 지원하는 등의 목회 정책을 확립하여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고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누가복음> 9:1-6). 이 사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복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예배당이 문제가 되지 아니하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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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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