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인간 소외가 극복된 인간화의 실현에 있음을 알아 그리스도교의 인간관에 휴머니즘의 해석을 통해 구원 받는 구주 예수를 알고자 한다.
‘사람’은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로 법에서 나타난 권리. 의무의 주체자로 상대편과 자기 자신을 인격체로 가리키며 자기 외에 남을 막연하게 부르는 말로 자연인을 가리켜 사람이라고 한다면 ‘인간’은 물질이며 생물이고 인간에게는 마음을 쓸 줄 알아 자각할 줄 아는 존재이고 인간은 고도의 개성을 가지고 있고 자주적으로 행동 할 줄을 알아 인간이라 하여 ‘사람’과 ‘인간’의 차이를 알게 한다.우리가 잘 부르는 “아리랑”의 가사를 살피면 ‘아리랑’은 신을 지칭하고 ‘쓰리랑’은 사람을 지칭한다. 그래서 ‘아라리가 났네’는 신의 자녀들이 ‘사람으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성서에서 창조의 역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의 삶의 역사를 통하여 나타남을 알게 한다. 그 역사는 사람들의 삶의 자리에서 이를 살펴 증언하고 그 삶으로 이 세상에서 나라를 구축하고 관계를 이루며 삶을 펼쳐 나감을 믿게 한다. 이는 나라를 건국해서 보이며 실천하는 것은 그 역사로 족보를 살펴 삶을 엮어 흥망성쇠를 보여 믿게 한다.
여기서 살펴보는 것은 인간이 사는 세상은 사람이 삶만을 위해 사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임을 알게 하는 곳이 세상이다. 그리하여 세상이란 의미는 사람들이 한이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바깥세상’인 저 ‘세상인 본래의 천상’을 빚 되게 한다. 그래서 사람이 세상을 살다가 죽으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간다’는 죽음을 말하게 된다. 이는 세상만사의 온갖 모든 일이 하늘의 뜻 아래 있음을 알게 한다.
그리스도교에서 인간을 묻는 궁극적인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교의 인간관은 인간의 구원에 대한 진술을 처음부터 최종적 목표로 하고 출발함을 아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구원의 문제가 그리스도교의 인간관의 핵심이다. 인간의 존재가 유한한 자유, 그리고 소외로서의 죄를 특징으로 한다. 그리스도교가 인간을 처음부터 ‘죄인’이라고 규정하고 선포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가장 본질적인 것이 곧 ‘인간의 구원’에 대한 메시지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간의 구원에 대한 메시지로서 예수는 곧 ‘그리스도’라고 선포한다. 예수가 자칭 그리스도라고 일컬어졌던 예수, 곧 실제로 역사에서 살았던 “역사의 예수”의 말과 행태에서 인간의 구원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 밖에 없다.
우리가 인간의 구원을 이해하고, 삶을 영위에 살아가는 데는 그 때 그 때의 실존적 상황과 사회적 역사적인 정황이 무엇인가? 에서 알게 하듯이, 구원의 현재도 구원 자체의 휴머니즘적인 성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즉 구원은 곤경의 삶의 정황에서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 예컨대 인간이 사회의 법을 어길 때 그리고 인간 자신이 인간으로 있지 못할 때 그리고 인간 자체로 부터 떠나 소외 상태가 될 때. 그리고 ‘나’가 인간의 주체성을 빼앗기고 남의 것이 되어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해 무시와 경멸과 모욕을 당해서 인간으로 행세하지 못해 인간 자체의 소외에로 전락된 때 인간 자체의 소외 극복이라는 현대적 의미를 늘 상 삶의 현실에서 보아 온 삶의 지평을 열어가야 한다.
여기에 오늘의 인간 사회는 인간 소외의 극복이라는 구실로 인간화의 실현을 구심점으로 말하지만 그러나 구원을 죄로부터의 구원이라고 할 때 인간의 ‘자유와 해방’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인간화의 실현에 오늘의 구원이 있다면 여기에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교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교의 구원의 메시지는 ‘인간 부재’의 현실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임을 믿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알고 갈 것은 “하나님은 사람이 잠잠하면 돌로도 소리치게 하는 분이심을 알게 한다.”(눅19:40)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당나귀와 같은 짐승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교의 예수만이 아니라 ‘인간’을 걱정하는 모든 사람의 예수이심을 믿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라. 복음을 믿어라.”(마가복음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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