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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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인 선교사 데이비슨 내외가 선교지로 항해하는 중 전염병 검역을 위해  열대 지방의 한 섬에 머물게 되면서 <비>는 시작된다. 배에서 알게 된 의사 부부와 함께 하선한 일행은 하나밖에 없다는 허름한 숙박업소에 도착한다. 창녀로 보이는 미스 톰슨도 같은 집에 머무르게 되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축음기로 음악을 틀어대는가 하면 사내들을 불러들여 “장사”를 하고 있는 눈치다. 그녀의 짓거리는 데이비슨 목사를 참기 어렵게 했다. 그렇지 않아도 막 우기에 접어든 섬은 소나기가 큰 북을 울리 듯 요란하게 허술한 지붕을 내리쳤고 폭포 같은 물줄기가 시야를 가리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미스 톰슨은 데이비슨 부부가 고깝다는 듯이 적의에 찬 눈길을 쏟는 것이었다. 참다못한 선교사는 회개시켜보려 이손저손 써보지만 상대조차 해주지 않는 그녀였다. 선교사가 지사에게 압력을 가해 그녀를 샌프란시스코로 강제로 송환하는 길을 택하자, 해볼 테면 해보라며 기고만장이던 창녀도 두 손을 든다. 송환되면 감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을 돌려 그녀가 목사에게 다가선다. 기특하게 여긴 목사는 그녀의 회개를 위해 갖은 애를 쓴다.
집요하게 퍼부어대는 열대의 빗줄기. 마치 그 비에 동조하기라도 하듯 목사는 그녀의 방에서 열심히 기도했고, 미스 톰슨의 자세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목사는 “거듭나고 있구나. 밤과 같이 어둡던 영혼이 이제 눈처럼 청순해지고 있다.”하고 의사에게 자랑한다.   
강제송환 전야, 목사는 밤늦게 까지 그녀의 방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바닷가에서 목을 베어 자살한 데이비슨 목사의 시신이 발견된다. 시신을 검진한 의사 맥펠이 미스 톰슨을 찾아갔더니, 놀랍게도 이전보다 더 진하게 화장을 한 그녀가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무라는 의사를 증오에 찬 눈길로 노려보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사내란 더러운 돼지! 이놈이나 저놈이나 모두 같아. 돼지! 돼지!”
맥펠이 숨을 몰아쉰다. “모든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알아차린 것이다.”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러나 무엇을 알아 차렸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창녀가 목사를 유혹한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그녀가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목사가 실망한 끝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으로 읽지 말란 법도 없으리라. 연일 퍼부어대는 비에다가 모든 것을 돌릴 수는 없기에.  
독자들은 작품에 깔려 있는 교묘한 복선들과 만난다. 이를테면, 목사가 창녀를 회개시키고자 한참 열을 올리고 있을 즈음, 의사 맥펠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네브래스카의 산들이 자주 꿈에 나타난다는 것. 그러자 의사 또한 그 산들을 본 기억이 난다면서, “그 모양을 보면서 어쩐지 여성의 유방을 연상하곤 했노라”고 회상한다.
그런저런 복선을 거친 결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목사도 본능 앞에서는 신앙이 혹은 이성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는 인간의 한계와 죄의 깊이를 그리고 있다”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상식일지 모르지만, 어쩐지 비아냥거림이 감지되는 것 같다.    
작가는 이야기의 끝 부분을 우정 블랙박스에 담고 있는 것일까. 블랙박스 속에 감추어져 있는 진실은 언제나 스캔들의 자료가 되게 마련이 아니던가. 선교사와 창녀의 게임에서 승리한 쪽은 창녀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창녀의 승리는 창녀로 하여금 영영 창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남자는 모두 돼지!”라는 앙칼진 창녀의 부르짖음은 승리의 함성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절망의 푸념일까.
“스캔들”의 사전적 의미는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또는 불명예스러운 평판이나 소문”이라 정리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어원을 더듬다 보면 성서에까지 거슬러가야 한단다.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마태 11:6)는 예수의 어록에서, ”걸려 넘어지다“는 그리스어 ”스캔다론“에서 왔다는 것.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에서 ”나“는 곧 예수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어야할 대상은 지금 예수를 증거 하려다가 감옥에 있는 세례자 요한이었다니.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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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란 모두 더러운 돼지!”-서머셋 몸의 '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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