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풍조는 기능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의 위험을 본다. 여기에 신학자 마르틴 부버는 '오늘의 사회는 집단은 있으나 공동 사회는 없다'고 한다. 유기체적인 삶의 결여로 기능주의의 의미를 알게 하여 이로서 유기적인 관계를 알게 한다. 여기에 본질이나 내용보다도 그 기능이나 작용을 중시하는 점을 알게 한다. 오늘에 있어서 그 시대어로 모던(modern)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이 매너리즘의 시대는 그런 뜻에서 이전의 가치체계에 대한 하나의 반역의 시대로 그런 특징이 생활감정과 예술 전반에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비 고전적 내지는 반고전적인 것으로 주관주의와 기능주의를 그 근본 성격으로 간주하게 함도 알게 하지만 사실로 삶을 살아가는 데는 기능만이 아니라 삶은 살아있는 것이기에 살아있음으로 살림이 됨을 알아야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정치와 경제 제일주의와 권력이라는 등식 관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오늘의 사회 구조 속에서 권력 남용이라는 인식이 통하는 사회의 구조 속에서 시달려 왔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는 삶의 가치관이 혼돈된 시대적 삶의 방향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가치관이 혼돈된 시대에 살면서 혼돈된 시대에 사람들을 올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을 갈구하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치가 혼돈된 시대에 방향을 몸소 실천하는 지도자가 아쉬움을 절절히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정치개혁은 제도 개혁도 중요하지만 모든 정치인의 의식 개혁이 더 중요함을 현실에서 갖게 한다. 이렇게 오늘의 정치 위기는 잘못된 가치 의식과 그 규범에서 유래됨을 알게 한다. 예컨대 양심의 빈곤, 윤리의 타락, 질서의 굴절이라는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는 곧 정의보다는 불의, 신뢰보다는 불신, 질서보다는 무질서가 속출하는 어두운 사회 현실을 보게 한다. 삶의 가치는 바른 길을 택하여 걸어가야 한다. 세상이 건저하게 걸어가야 하는 길은 삶의 가치를 택하여 정도를 밟아 살아가게 되어 있다. 처음 세상을 알게 한다. 예컨대 정치가 진실과 정의와 인권과 박애를 중심하지 아니하고 자기이권을 중심으로 음모를 한다든가?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기회로 국민을 기만하려 한다면 잠시 이는 성공한 것 같게 보일런지는 모르지만 그 결과는 허무와 몰락의 길을 자처하게 될 것이다. 이는 사람의 양심과 신념, 신조를 속이지 않고 양심을 따라 이를 행하면 만인의 추앙을 받게 된다는 사실과 진실이 여기에 있기에 타인의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심의 하늘의 뜻을 믿게 한다. 모두 함께 지으신 그 뜻을 헤아려 이 세계를 이분법적인 관계로 보지 않고 통전적으로 보고 유기체적인 생명 관계로 살피는 믿음의 지혜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여기서 더 생각 할 것은 오늘의 신학자 화이트 헤드(A.N. Whitehead ,1861-1947)의 “과정신학”을 적용해 보면 그는 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공간과 시간과의 관계를 전제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한다. 예컨대 인간이 사는 공간의 삶은 필히 시간과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함을 제시한다. 그는 인간이 행동하기 위해서는 공간을 조정함과 동시에 행동하는 것으로 공간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그 의미가 인간이 삶을 영위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간을 조정함과 동시에 행동하기 때문에 여기서 사실과 의미가 부여되고 사물에 대해서는 사실 공간, 자연 공간, 인간 공간으로 그 의미 있는 공간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한다. 여기서 알게 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이 세상 만물을 창조했다”는 신앙으로 그 공간 안에 가능한 모든 차원의 세계를 초월하신 분으로 창조자 하나님을 믿게 함에 유의한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공유하는 우주 공동체 의식을 갖는 신앙고백을 알게 한다. 이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고간의 신앙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깨닫게 한다. 이렇게 인간도 한 생명으로 우주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삶의 가치를 누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함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과 우주만물을 이분법적인 대립으로 보지 않고 통전적이며 유기체적인 생명관계로 믿는 믿음임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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