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0-0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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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기독교가 뿌리내림으로써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주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그 신념으로 인하여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오늘날 세계 10위 안에 드는 무역 대국으로 발전하였다. 교계에서도 대형 예배당이 수없이 많이 늘어났다. 서울 뿐만 아니라 지방에 가서 보아도 대형 예배당들이 눈에 확 들어 올 정도로 많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목회자들은 “장막터를 넓히자”며 예배당 확장을 위하여 건축 헌금을 하자고 제의하는 경우가 많았고, 교인들도 이에 잘 호응하였다. 주님의 뜻이면 이루어진다는 기도는 교회의 대형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해외 선교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는 말씀은 교인들의 마음에 각인되었고, 해외 선교를 위한 기도와 헌금도 잘 이루어졌다. 고통받으면서도 유럽 곳곳에 교회를 세워 가는 바울의 선교는 교인들에게 매우 인상깊게 다가와서, 한국은 해외 선교에 대한 지원을 잘 하여 3만 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국가로 자리매김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양상이 달라졌다. 1997년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해외 선교를 위한 퍼주기식 선교가 한계에 다달았다. 몽골의 경우를 보자.  교단별로 세웠던 신학대학이 국내에서의 지원이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자 모 교단에서 세운 신학교는 폐쇄되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의 대형 교회에서 울란바토르 지역에 지원하여 세웠던 대형 예배당에서는 신자 수가 많지 않아, 겨울이면 석탄 연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좁은 유치부실에서 예배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몽골의 종교 정책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세운 교회에서는 무거운 세금 폭탄으로 인하여 교회 문을 닫아야 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교인들에게 꾸준히 성경 공부를 체계적으로 시킨 교회는 성장하여 갔고, 제대로 신학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몽골 변방으로 간 몇몇 몽골 성직자는 예배당 건물을 팔아 자취를 감춘 경우도 있었다. 선교사들이 여러 시행 착오를 겪는 와중에, 국내에 있는 대형 교회에서는 처음에는 많은 지원을 하다가 해가 거듭될수록 지원을 줄여 어려움을 겪는 선교사들도 많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반면에, 사탄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는데, 몇몇 교회에서는 몸에 맞지 않는 예배당 대형화를 모색하다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부도를 맞는 경우도 있었다. 조그만 개척 교회는 대형 교회에 밀려 성직자의 지인들만이 예배 시간에 자리를 채우는 경우가 많다. 개척 교회가 부흥하여 대형 교회가 되었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교계 지도자들은 미래에 물신주의의 범람으로 인하여 한국 교회도 유럽의 교회들처럼 교인이 없는 예배당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한다. 왜 이런 염려가 생기는 것일까. 이는 교계 지도자들이 한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물질적 축복만을 강조하다 보니 일어난 일일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도 복지 국가 대열에 들어선 만큼 ‘보릿고개’라는 말도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대중은 배고픔을 면하는 문제보다 얼마나 멋있게 인생을 사는가에 관심이 더 많다. 대중이 K-Pop이나 웹툰, 게임, 영화 등으로 즐길 일이 많아졌고, 서민들도 웬만하면 해외 여행을 가고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다닐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이들에게 하나님이 물질적 축복을 주실 것이니 교회에 오라고 하면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성직자들이 생각해 낸 것이 기독교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가 그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와 천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에만 얽매여 있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파들보다 소외되어 있던 서민들에게 관심을 더 가지셨다.  그는 하나님이 아주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구약 시대의 사람들에게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시고, 당신의 십자가 부활 후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와 함께 함을 알게 하셨다. 또한 권력자나 부자에게 보이는 행복의 허상을 보지 말고 개인에게 임한 행복을 추구하게 하셨다. 그 행복은 죄의 굴레를 벗어나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을 앎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며,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함께 함으로써 체현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주님이 동행하고 계심을 확인하고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을 제시하셨다. 주님이 십자가 보혈로 하나님의 자녀를 구원의 길로 나아가게 하신 사랑은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한 위대한 인간미였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이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몸으로 체현하자.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알 때, 인간미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음을 상기하자.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당신은 행복한 자이니, 기도로 영적 호흡을 하며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자.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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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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