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3부 이제는 교회개혁과 신앙개혁이다

42. 교회 지도자들의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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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이 말씀은,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큰 복을 받기를 기대하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역설적인 도전이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고 주님이 가신 길을 따르는 것은 만사형통의 길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고난의 길, 희생의 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 14).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통해서 얻는 축복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이나 세상의 명예나 안락한 삶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할 줄 알고 긍정적으로 대처하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안정된 심령과 평안한 마음이다. 그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값진 보물이다. 그리고 그 보물은 자기희생과 헌신적인 삶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이기 때문에 세상의 상식과 법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원리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이 희생과 헌신의 정신은, 교회를 지도하는 목회자들이 가장 먼저 실천하고 보여주어야 하는 참 목자의 모습이다. 우리의 목자장이신 예수께서 그렇게 사시면서 먼저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과 목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목사를 잘 대접해야 복을 받는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되어 있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것인가?

공산주의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
1917년 11월 7일 레닌이 주도하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시작된 구소련의 공산화는 무자비한 폭력과 학살을 통해 짧은 시간에 큰 성공을 거두었고, 20세기 지구의 거의 절반을 지배하는 세계적인 힘으로 급성장하였으나, 20세기가 끝날 무렵 1991년 12월 고르바초프의 사임과 함께 그 해 12월 31일 구소련이 해체됨으로 공산주의는 그 종지부를 찍었다. 공산주의가 그렇게 급속도로 성장한 이유 중의 하나는 유물론 사상으로 무장한 극도로 충성스러운 당원들의 희생정신이었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할 뿐만 아니라 생명까지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에게는 핵심 희생자 계층이 있습니다. 우리는 총살형과 교수형을 당하고, 치욕을 당하며, 직장에서 해고되었으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가능한 모든 거친 대우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중에 상당한 비율의 사람들은 피살되거나 투옥되었습니다. 우리는 사실상 극심한 빈곤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가 얻은 수입 중에서 생존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제외한 모든 돈은 한 푼도 남김없이 당으로 돌립니다. …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광신자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광신자들입니다. 우리의 생애를 지배하는 위대한 동기는 세계의 공산주의를 위한 투쟁, 그것뿐입니다. … 그것(공산주의)은 나의 인생이요, 나의 생업이며, 나의 신앙이며, 나의 취미 생활이요, 나의 애인이요, 나의 양식이며, 내 삶의 전부입니다. … 나는 나의 이상 때문에 이미 투옥되었으며, 필요하다면 더 처참한 곳이라도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정신을 가진 특수한 계층의 헌신 때문에 공산주의는 성공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공산주의 사회에도 특권층이 증가하게 되었고, 계급이 만들어졌고, 무사 안일하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고자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이 작동하게 되었을 때 공산주의는 힘을 잃었고 쉽게 무너졌다. 물론 패망의 다른 이유들도 있었으나, 핵심문제는 사람에게 있었다.
 
오늘 교회 지도자들의 정신은 어떠한가
목사가 교회를 처음 개척할 당시의 그 열정과 그 희생과 헌신의 정신을, 교회가 크게 성장한 후에도 유지할 수 있다면, 참으로 충성스러운 목자일 것이다. 인간에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목자는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목사들에게 희생과 헌신의 정신은 사라지고 오히려 성도들에게 대접을 받으려 하고 군림하려고 하고 물질이나 명예를 탐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교회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분란과 분쟁에 중심에 목회자가 자리하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수의 정신으로 성도들과 교회를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는 정신으로 목양하는 목회자는 교회에서 재정문제로 분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성도들을 섬기고 헌신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지도하는 목회자는 성폭행 성추행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다. 목사를 잘 섬겨야 복을 받는다는 말은 평생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국가나 사회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수준이 낮은 집단으로 전락해가는 중대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일차적으로 목회자의 처신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목사들이 올바른 본을 보이면 성도들은 그 모본을 따라 배울 것이고, 그러한 목사들의 영향력은 사회전반에 걸쳐서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초기에 예수의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은 그야말로 철저하고 완전한 희생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었다. 야고보와 마태는 칼에 목베임을 당해 죽었고 빌립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마가는 사지를 묶인 채 밤새도록 끌려 다니면서 피투성이가 된 채 불태워 죽임을 당했다. 베드로와 다대오와 시몬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다대오는 창으로 찔려 죽었다. 요한은 끓는 기름가마솥에 들어갔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나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사도 바울은 네로에 의해 칼로 목베임을 당해 죽었다.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을 때 그 십자가의 결말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 9:24)는 말씀 안에 목회자가 걸어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함축되어 있다. 죽음은 희생의 극치를 말하는 것이다. 교회를 지도하고 목양하는 목회자는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공산주의 사상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도 목숨을 바쳐서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들에게 희생정신과 헌신적인 열성이 없다면 교회는 결국 그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이다.

목자장 예수의 정신과 품성
이 땅에서 교회를 섬기는 모든 목사들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겸손한 모습으로 사람을 섬기는 것이었다.예수님은 철저한 희생과 헌신의 산 표본으로 참 목자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주님의 삶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주님이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신 희생과 헌신의 정신으로 성도들을 인도한 목사들에게 위대한 약속이 보장되어 있다.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 5:3,4). 힘을 잃어가고 있는 한국 기독교회가 다시 회생할 수 있는 첫 단계는 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회개하고 예수의 정신으로 자신을 희생하여 목숨 바쳐 헌신하는 일이 아닐까? ‘자기희생의 법칙이 자기보존의 법칙’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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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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