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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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역사와 정의 평화는 궁중 중심사요, 지배자와 강자 중심이며, 권력과 자본가의 중심이자, 힘 있는 자와 가진 자들의 역사이었다. 그것은 동시에 여성을 배제하고 소외 시킨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역사이었다.
민중이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으나 그 초점은 바로 권력과 자본, 문화와 사회, 종교와 학문, 정보와 지식 등 인간 삶의 모든 중심으로부터 소외 되고 밀려 난 변두리와 주변부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대 다수의 사람들을 총칭한다. 그들은 권력과 자본가들, 강자와 힘 있는 자들, 그리고 자신들이 노동을 통해서 만든 생산물로 부터까지 배제와 소외를 당하고 사는 억울한 자요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자이며, 서리서리 한을 쌓고 사는 자들을 말한다. 촛불혁명의 주체이면서도 그 촛불권력자와 자본가들로 부터까지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사는 자들을 말한다.
일제를 거쳐서 해방공간에서의 남북의 미소 점령군에 의한 통치, 군부 유신 독재세력과 박정희 몰락 후의 신군부 전두환 노태우의 세력들, 김종필을 중심으로 1997년 민주정권을 이루지 못한 김대중 김영삼 등의 유신 군부 독재 세력과의 정치적 야합은 민중들을 배신한 권력의 탐욕적, 반역사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추악한 악의 세력들은 사이비 종교 세력들의 아부와 아첨을 통해서 민중들에게 아편을 주사하는 것으로 유지 지탱된다. 지금까지의 역사란 이러한 민중을 탄압하고 압살하고 속이는 불의한 권력들과 자본가들, 그리고 사이비 언론들과 사이비 종교 세력들의 야합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고대로부터 이러한 악의세력들에게 저항과 투쟁으로 일관된 싸움을 통해서 역사의 바름과 정의를 세우고자 하는 민중들의 크고 작은 운동들은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 움직임들은 불의하고 악한 세력들에게 언제나 짓밟히고 억압당하며 희생물의 퇴적이 되어 온 것이다.
팍스로마나 세력과 야합된 기독교 세력은 유럽과 서구사회의 인간의 탐욕을 충족시키는 식민지 확대 세력의 영양분으로 오늘까지 명맥을 유지 시켜 오고 있다. 서구 기독교세력은 이들의 지배와 통치의 수단과 방법의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넉넉하게 해 오고 있다.
소위 로마를 거쳐, 대영제국의 “해가지지 않는 나라”그리고 청교들에 의해서 아메레카 인디언들의 정복과 학살 억압의 역사를 이룬 ‘경찰국가’와 다국적 초국적 기업들이 있기까지 역사적 예수를 팔아서 그 상품으로 오늘의 불의한 세력유지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촛불정부를 운운하며 중정을 만들어 정보와 공작정치로 분단의 현실과 상황을 십분 악용하며, 농민과 노동자들의 저곡가 저임금의 착취와 그들에 대한 정치적 억압과 탄압, 유신 독재의 중심에 있는 김종필, 일제의 죄사함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오히려 밀담을 통해 민족의 한과 억울함을 서푼에 팔아넘긴 그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의 훈장을 추서하는 눈속임은 여러 가지 정치적 현실과 타개를 생각한다 할 지리라도 역사청산과 국민들의 바른 역사교육 차원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고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진정한 적폐청산 없이는 참 평화와 민주, 통일의 길은 반쪽이 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역사의 청산은 뒤로 미루고 보류할수록 어려워진다. 그러한 행태는 왜곡을 낳고 또한 새로운 적폐를 쌓게 할 뿐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역사에 아부아첨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시의 삶에 대하여 ‘예’ ‘아니오’를  분명히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타협이나 협상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징적 역사현실을 무시하는 것은 미래의 역사를 회복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끌고 갈수 있는 것이다. 평화와 통일은 남북의 민중들을 역사의 주체로 인정하고 그 중심에 놓아야 한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민중들의 역사의 중심으로부터 주변과 변두리로 몰아가는 것은 거짓된 평화요 거짓된 통리 행보이다.
우리의 평화와 통일의 길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 길은 멀고도 먼 상황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질 평화요 통일이다. 남북의 상황은 변화의 지축을 흔들고 있고 한반도 주변국들의 역사적, 외교적 틀이 흔들리고 새롭게 짜여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다극화 되고 다변화된 역사를 충실히 성찰하고 시대적 하늘의 소명과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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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주체는‘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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