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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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행복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그동안 여러 번 행복을 찾아나섰었다. 행복을 찾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여행을 다니며 사물을 관찰하기도 하였고, 철학 서적을 통하여 행복을 말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도 읽었다. 물질적 부를 좇아다니기도 하였고, 문우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러나 행복이 손에 꽉 잡히지 않아 나름대로 고민하였다. 왜 나에게는 행복이 없는가. 국민 소득이 그다지 높지 않은 네팔 사람들도 행복지수가 높다는데.
행복을 찾아 집을 나선 후 첫 번째 고개에서 나는 물질적 부를 내려다보았다. 커다란 저택에서 멋있는 오픈카를 타고 나가 편백나무가 늘어선 시골길을 달리는 광경도 그려보았다. 세월이 흐른 후 실제로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물질은 나를 일정한 채움으로 만족시켜 주기는 하였지만, 영원에까지 나를 데려가지 못하였다. 물질은 여전히 어느 곳에 놓여 있을 뿐이고 영원까지 가지고 갈  생명수가 되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내려와 여행을 다녀 보기로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토록 선호하며 권하는 여행은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들로 인하여 나의 눈을 맑게 씻어 주었다. 수천 개의 석회암이 돌출해 있는 베트남의 하롱베이에도 가 보았고, 버스를 타고 달려도 달려도 2천 미터 이상의 고산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 로키 산맥도 구경하였다. 여행사를 통해서 전국 방방곡곡의 명승지를 가 보았지만, 한 번 다녀온 산야는 기억에만 남아 있을 뿐 더 이상 나를 영원에까지 데려가지 못하였다.
물질과 여행의 고개를 넘어온 나는 그렇다고 영원으로 가는 길찾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수천 권의 책과 논문을 발췌해서 읽었고, 멋진 시를 읊조리며 낭만 가객의 역할을 해 보았다. 여러 시낭송회에서 시를 읊조리면서 인간미가 있는 존재를 모색하기도 하였다. 시를 짓는다는 것은 나를 멋있는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활력소가 되었다. 다만 나에게 수천만의 독자를 감동시킬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까왔다. 물론 나는 요즘도 계속 사색하고 작품을 창작하는 일에 매어달리기는 하지만, 그 일이 나를 영원에 데려다 줄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좋은 시는 시인의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어서 줄기차게 내 가슴을 울릴 만한 담론과 이미지를 찾기에 골몰하여야 했다. 나는 머리도 식힐 겸 잠시 시 짓는 일을 놓아 두고 다시 행복의 길을 찾아나섰다. 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강원도 밤하늘의 별무리도 바라보고, 몽골 초원을 달리며 고독의 시간을 가져 보았다. 고독은 나에게 나 자신과 대면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그분이 성직자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동행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삭개오 이야기가 나에게 다가왔다.
주님은 삭개오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 그는 이스라엘의 세리였다. 당시의 세리는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로마제국과 이스라엘 분봉왕에게 납부하여야 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백성들로부터 원망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하여 백성들은 과중한 세금을 매기는 세리들을 비난할 뿐만 아니라 왕따시켰다. 삭개오 역시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던 그는 군중들에 둘러싸인 예수님을 먼 데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 예수님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세상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알고 싶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꾼 표적을 보였을 뿐 아니라, 병자를 치유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배고픈 자에게는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는 음식을 제공하셨다. 풍랑이 심하게 이는 호수 위를 걷기도 하셨다. 뭇백성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사람에게 여러 표적과 말씀으로 군중을 감동시키는 주님이 찾아오시는 것을 삭개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실체를 보기 위해서 뽕나무 위에 올라가 멀리서 주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주님을 알고 싶은 그의 소망이 통했는지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주님이 삭개오를 바라보더니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묵겠다”.
내가 행복이 있는 길을 찾아나서면서 삭개오 이야기를 접하게 된 것은 나에게 매우 뜻깊은 행운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나에게도 삭개오와 같은 외로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학식과 경험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었다. 나는 그분이 나의 집에 방문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마음에 빗장을 걸어두고, 나만의 철학적 체계와 아름다운 글을 모아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서가에 꽂힌 책처럼 장식만 되어 있을 뿐 내 안에서 생동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오셨다. 그분은 마음의 집 마당에서 미적 감각과 정서를 담고 계셨고, 성령의 모습으로 나에게 오셨다. 그리고 나에게 영원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셨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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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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