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0년대 필자는 서남동 교수와 안병무 교수 그리고 한신 교수님들과 함께 민중신학을 알게 되었다. 아니 그분들에게서 민중신학을 직접 배우고 토의하고 세미나 등을 가졌다.
민중들은 고대에도 그리고 중세를 지나 계몽시대와 근 현대까지 존재한다. 시대마다 민중의 모습은 문화적 현실에 따라 다르다. 역사는 대개의 경우 있는 자와 가진 자의 역사로서 기술된다. 삼성에서 일하다 병이 들어 죽은 노동자의 이름은 그저 안개와 같을 뿐이고 이병철이나 이건희 이재용은 역사의 전면에 거론된다. 권력자와 지배자 그리고 자본가들의 역사는 중심에 있고 그들로부터 억압과 착취를 당하며 희생물이 된 민중들은 기억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먹을 곳이 있는 곳에 벌레들과 기생충들이 모여든다. 특히 살아 있는 권력이나 자본가의 주변에는 아부와 아첨꾼들 거짓된 레위인들이 우글거린다. 구약성서의 배경은 거의 4천년 이상이고 신약성서는 2천년을 넘어서 있다.
한국에 기독교의 원년을 카톨릭은 1784년 개신교는 이후 1884년이나 1885년을 논한다. 1882년 조미 수호조약이 있고 1894년에는 동학농민혁명이 있었다. 그리고 1905년과 을사늑약, 테프트-카쯔라의 미일을 통한 반도와 필리핀의 지배 승인의 야합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910년은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치욕적 민족 식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일제의 억압과 교활한 통치의 시대를 지나는 동안 우리 민족구성원들은 강제의 이주민 아니 난민들로써 만주와 우라지보스톡과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 흩뿌려졌었다. 그리고 우리의 아리따운 소녀들은 일본의 탐욕적 정복의 전장 터에 성노예로 끌려가고 우리의 젊은 청년들과 아비들은 그 전장터의 총알받이로 죽어갔다.
그들은 분명 난민이었다. 분단 이후의 북으로부터 내려 온 사람들과 한국세계전쟁(6.25)으로 인한 1000만의 이산가족과 수백만의 사상자들, 그리고 고아와 과부 나그네들이 한반도를 뒤 덮었다. 그들은 분명 난민이었다. 월드비전을 비롯한 많은 NGO들은 그 전쟁과 함께 지금도 존속하고 있다. 성서는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의 430년의 노예 살이의 억압으로 그들의 한의 소리, 부르짖음(체아카)을 들으셨다.
하나님께서 40년 궁중살이를 떠나 살인자로 미디안 광야에서 외롭게 떠돌던 모세(물에서 건진자)가 80세가 되던 그 나이에 해방의 깃발을 들고 앞장서라 명하시고 60만 장정들과 그의 권속들을 데리고 탈출(EXODUS)을 명 하신다. 난민들은 억압과 죽음의 질곡 속에서 떠도는 나그네요 떠돌이요 민중이며 피난처와 보호처가 필요한 세상의 권력과 자본의 중심으로부터 아니 자신들의 민족과 국가와 사회 종교들로부터, 그리고 자신들로부터도 소외된 버림받은 존재들이다. 물론 그중에는 많은 세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던 한국 사람들처럼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제 3세계 가난한 민중들이 있다. 좀 더 나은 삶의 환경과 질을 높여보고자 하는 직업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계화는 다문화이며, 다민족화이며 이제 민족이나 국가적 차원을 넘어서는 세상을 살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의 자국의 보호와 위험을 막는다는 존재의 원칙적 자세들을 이야기 하는 것을 인정한다 치더라도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시에 나그네요 떠돌이요 난민인 히브리인들이요 하비루. 하삐루, 혹은 암-하렛츠, 곧 땅의 사람들이다. 지금까지의 강대국들과 다국적, 초국적 기업들의 야합은 인간을 생명체로 보지 않고 하나의 자기들을 위한 탐욕의 도구들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든 난민들은 이들과 또한 이들과 밀통을 통한 야합의 결과로 발생한 힘없는 민중들이다. 무기장사들과 이들을 부추겨서 난민들을 조장하는 간악한 탐욕꾼들의 야합이 그 속에는 도사려 있는 것이다. 예수 시대에도 구약 시대에도 인간이 태동한 그때부터 실상의 난민들은 존재했었다. 그들은 떠돌이, 민중이라 부른다. 나라를 빼앗기고, 고향에서 쫓겨나고 가족과 흩어져야 하는 난민들의 역사가 세계사이다. 인간들은 착각의 존재이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반석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가진 부동산과 재물들, 권력들이 언제나 자신을 지켜 주리라고 혼돈 속에 산다. 자신의 젊음과 자신의 건강이 언제나 행복한 오늘을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가장 똑똑하고 지혜로운 존재라고 자만과 오만에 빠져 사는 인간들의 이성과 학문, 기술들이 자신들을 구원해 주리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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