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진보정당이 뿌리는 분단의 과정에서 좌익으로 분류되어 우익들에게 정죄 당한 과정을 겪어왔다. 특히 분단 상황에서 통일을 말할 때마다 ‘빨갱이’나 종북으로 혹은 간첩으로 몰려서 옥살이를 하거나 고문당하고 연좌제 법에나 국구보안법에 걸려서 개인은 물론이고 가정 전체가 수난을 당하고 해체 되는 아픔을 살아야 하였다.
진보란 정도나 수준이 지금보다는 나아지는 것이고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다라서 사회의 변화나 개혁 혹은 혁명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진보의 반대는 단순히 보수가 아니다. 진정한 보수는 변함없는 진리를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는 가치의 존재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진보란 보수의 가치를 반대하거나 도외시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지키고자 하는 보수를 바탕으로 그 진리를 온전하게 만들어 가고자 하는 역사발전의 법칙을 추구하고자 한다. 진보세력은 항상 거짓 된 보수 세력에 경제와 경계를 당하고 어업당하거나 짓밟혀 온다. 조선과 한국의 진보는 일제로부터 억압을 당하고 그 일제가 청산되기 전에 강대국들에 의하여 압살의 길에 들어선다. 특히 분단이 시작 되는 냉전의 출발로부터 진보의 길은 험하고 고통의 길임을 역사는 증명한다. 북조선민주주의공화국과 남쪽의 대한민국의 서로 다른 이념으로 세워진 가운데 진보의 길은 역사와 민족의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다. 남북의 정상과 북미의 정상이 만났다고 해서 진보의 길이 평탄한 길로 들어섰다고 볼 수는 없다. 진보는 언제나 열악한 조건과 환경에서 개혁을 넘어서 혁명의 길을 간다.
진정한 진보는 부패한 자본과 불의한 권력에 타협을 원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본래 정치적 동물이다.” 하였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란 인간의 생활 하는 동안에 필요한 일반적 규칙을 만들고 보존하며 수정을 해 가는 활동이라 본다.
학문적으로 정치(politics)는 정치학으로 말해서 이러한 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 이러한 정치는 불가피하게 갈등과 협력, 타협과 협상, 서로 다른 가치를 근거로 경쟁과 때로는 싸움과 전쟁을 하기도 한다. 한남 아렌트(Hanna Arend)는 정치권력을 공동행위요, 협동행위로 규정짓기도 한다. 정당은 이러한 자신의 가치와 이념을 근거로 한 권력을 붙잡아 그 가치를 역사와 인간의 삶의 현장에 실현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활동한다. 고대국가를 거쳐 근대민족주의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소위 복잡한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수많은 정치 이념과 정치문화가 실험되고 수정되었다. 보수건 진보건 간에 각자의 이해관계를 자신들의 이념과 목표에 따라서 가치의 실현을 하고자 한다.
여러 가지 형태의 정치는 간단히 말하면 인간들의 자기세력화를 위한 목적을 지닌다. 보수의 경우는 기존의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자본과 가진 자의 이익을 대변하며 그것에 아부와 아첨을 하면서 변화나 개혁, 혹은 혁명적 사고나 행동을 거부하고 경계하며 억압하려 든다. 일제 식민치하에서의 권력이란 식민체제의 변화를 바라지 않고 한민족을 노예처럼 부리고자 하였다. 심지어는 그들의 전쟁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성을 노예로 삼기도 하고 인간의 인격을 송두리째 빼앗고 짓밟았다. 이러한 식민지 극복을 하고자 하는 독립운동을 불량선인으로 취급하여 억압하고 고문하고 감옥살이를 하게하며 잔인하게 학살하는 것을 예사로 하였다.
거기에 인간다운 삶의 가치는 자리할 곳이 없다. 분단 이후의 북쪽의 정권은 공산당, 혹은 노동당의 특권층이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유지 보전하기 위하여 특권계급을 제와한 대 다수의 민중들을 노예화 하고 그들의 자유를 제한하며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게 하였다. 해방 공간에서의 미군정은 자신들이 짜놓은 정치 스케줄과 가치로 남한 정권을 만들고 73년을 자신들의 신식민지의 울타리에 가두어 두고 있다. 진보는 언제나 역사의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걸어온다. 조봉암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우익 민족주의자들, 김구까지 특히 중도를 표방하는 건국위원회의 여운형과 김규식 등을 억압 암살하며 새로운 식민지 주인에게 철저한 복종과 아부와 아첨을 하며 진보적 정당들을 탄압하여 왔다.
진보는 정의와 역사발전에 근거하여 민중들의 삶의 질을 높이며 인간이 사는 최고의 가치와 궁극적 목표를 향하여 운동한다. 노희찬은 7-80년대 이후 살인적 독재에 저항하며 노동자들과 민중들의 삶의 질을 위한 투쟁과 싸움을 해 온 현대 진보정당의 얼굴이라 볼 수 있다. 그가 가져 온 개인적 삶의 가치를 넘어서 정의롭고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며 평화를 통한 분단모순과 계급적 기본모순을 극복하고자 고군분투한 대표적 진보정당의 얼굴이다.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도 식민치하의 분단현실의 모순과 그 식민세력을 업고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소위 썩은 보수 세력들과 진보를 이해하지 못하는 작되지 못한 대중들에 의한 정치적 사회적 타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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