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 재앙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곱 번의 재앙을 당하고도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메뚜기 떼가 온 애굽 지역에 가득하여 우박에 상하지 않은 모든 채소와 나무를 먹어치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바로는 재앙이 지나자 다시 마음이 강팍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큰 권능과 능력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의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는데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심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강케 하셨을까요?
첫째는 바로 왕이 이스라엘을 끝까지 해방시키는 것을 지연시켰고,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함이었고, 하나님 편에서는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알리기 위함 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시고자 함이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권능을 알게 하시며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 해도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같이 되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십니다(출 7:13).
주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심으로 그가 그들에게 듣지 아니하였으니 주께서 말씀 하신대로 되었더라. 이방인들에게 드러내 보이시고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능을 보이시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직접 기적을 행하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도구로 사용하여 권능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을 애굽에 파송한 이유는 애굽에서 인도해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은 것은 곧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가 됩니다. 바로 왕은 메뚜기 떼로 인한 엄청난 재앙을 당하고도 계속 불순종합니다. 메뚜기 떼들은 애굽 사람의 영혼을 황폐케 하는 악령의 모형이며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메뚜기를 통한 재앙의 무서운 점은 우박으로 인한 재앙으로부터 운좋게 남아있는 애 굽의 모든 채소나 푸른 것을 쓸어 버린다는데 있습니다. 즉 앞선 재앙에서 하나님의 자비로 남겨놓은 것을 이번에는 쓸어버린다는데 있습니다.
메뚜기 떼들은 오늘날 영생의 말씀이 아닌 인본주의 신앙 비성경적인 모든 학문과 사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흑암이 온 애굽을 덮은 것은 구원을 받지 못한 영혼들의 캄캄한 어두운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곧 구속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 흑암은 지옥의 또 다른 명칭 입니다(유다 1:13-16).
중세시대를 흑암의 시대(계6:12)라고 부르는 것은 영적인 캄캄한 어두움이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캄캄한 어두움은 진리가 왜곡되고 말씀을 떠난 심령은 어두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요 12:3).
애굽 온 땅에 흑암의 재앙을 내리신 것은 태양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심과 동시에 사단이 잠시 어둠의 깊은 곳인 무저갱에 갇힐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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