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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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표정은 독특하다. 네가 다소곳이 웃는 모습은 엄마 품에 안겨 한없이 편안함을 느끼는 천진난만한 어린애 같다. 네가 우는 표정으로 노래부르는 모습은 영락없이 뮤지컬 배우와 다를 바 없다. 너는 때로 춤춘다. 팔은 천장을 찌르듯 높이 쳐들고, 허리는 뱀처럼 또아리를 튼다. 몸을 오십 센티미터 위로 떠오르게 하고, 머리를 사물놀이할 때처럼 흔든다. 얼굴은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활기차게 돌리고, 팔은 풍차 돌리듯 마구 흔들어 댄다.
너는 대형 무대에 설 필요가 없다. 너의 일상이 곧 무대요 활동 영역이다. 너는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노래 부를 수 있고, 춤출 수가 있다. 그것이 너의 개성이니까. 너는 그분 앞에서 노래한다. 그분은 너의 어머니요 아버지니까, 너는 그분에게 예뻐 보일 필요가 있다. 가령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맛있는 걸 사 달라고 졸라댈 때 안 사 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 너는 그분 앞에서 어린 아이가 되어도 좋다. 너는 그분의 자녀이니까. 그리고 “하나님, 저 예뻐요?”라고 속으로 되뇌어라. 그분은 너의 믿음을 가상히 여기실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그분 앞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다. 죄악에 빠지는 건 염려하지 마라. 그분이 네 마음을 주관하시니까, 너는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다만 그분이 너와 동행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라. 그분의 의에 따르는 한 너는 안전하고 평화로울 것이다.
그분은 너에게 “변화산”과 아름다운 곳도 보이셨다. 그분은 베드로가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고백할 만큼 나름다운 곳에서, 세상의 그 어떤 세탁업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흠결 없는 옷을 입으신 네 앞에 나타나셨다. 너는 우주의 한 곳에 서서 네 안에 죄의 티끌이라도 있을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다. 지나온 과거가 그분이 인정할 만큼 깨끗하였는가를 되뇌어 보았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라. 네가 회개하고 그분이 구원의 문으로 안내하실 것을 믿는 이상, 너는 의인이라 칭함을 받을 것이다. 변화산에서 천사들이 수종드는 그 거룩한 모습을 기억하라.
그분은 변화산에만 계시지 않았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만 보아도 그분은 우리 옆에 계신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트려 수백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향유를 부어 그분의 발을 씻겨 드리신 것만 보아도 그분은 분명 현실에 분명히 계셨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이 네 안에 계시다는 것은 온 세계가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짐을 잊지 마라.  
가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일탈을 꿈꾸면서 조금 색다른 상상을 해 보곤 한다. 너는 시인들의 출판 기념회를 찾아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너는 남산에 있는 문학의 집, 종로에 있는 H관, 서대문 역사 박물관, 안산에 있는 S카페 등에서 노래를 불렀다. 주로 네가 사회자에게 다가가서 축가를 부르겠다고 신청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다행히 너의 제자가 반주 MR을 만들어 준 덕택에 거기에 맞추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수필가 K는 사회를 보면서 네가 축가를 부르겠다고 자청해서 순서에 넣었다고 청중들에게 알리는 바람에, 장내가 웃음 바다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너는 자신감이 쌓였고 ‘KBS 전국 노래 자랑’ 1500회 특집에 출연 신청을 하였다. 대개 신청한 사람들이 대중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너는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들고 예심장에 나갔다. 600여 명의 신청자 가운데서 네가 본선에 뽑힌 것은 순전히 너의 표정 때문일 거다. 너는 오십 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십대의 표정을 짓는 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16명이 본선에 오르는 무대에 네가 뽑히게 되었다. 그 중 한 명은 “딩동댕”이 아닌  “땡”으로 처리될 예정이었지만, 너는 거기에 들지 않기 위해서 밤새도록 박자와 음정을 표정까지 머릿속에 그려가면서 외웠다. 그 덕에 너는 특집의 여덟 번째 순서에 노래를 하여 텔레비전에 나왔다. 그러나 너는 노래의 질보다도 표정에 신경을 쓰다 보니까, 노래가 자연스럽지 못했다. 그래도 “땡”으로 처리되지 않은 것은 천만 다행이었다. 너는 주위의 지인들에게 1월 31일에 방송되니 시청하라고 대여섯 번씩 문자를 보냈다. 지인들은 평소에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네가 나온다니까 그냥 인사치레로 전국 노래 자랑을 시청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너의 순서가 되자 너는 온갖 인상을 써 가며 노래를 불렀다. 지인 한 사람이 친구 병문안을 갔다가 병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틀어 너의 노래 부르는 장면을 보았다. 그러자 병실에 있던 환자가 투덜댔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힘들여 노래 부르지. 보는 나도 힘드네.” 그 얘기를 듣고 너의 지인은 얼른 병실을 나와 버렸다. 그렇다. 너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너는 이제 너의 달란트를 찬양을 통해서 발휘해라. 진지하고 거룩하게, 친근하고 온유하게 노래 불러라. 그분이 너의 예쁜 모습을 보고 ‘그놈 참 귀엽다’는 혼잣말을 되뇌이도록. 그러면 너는 축복받은 것이다. 그러니, 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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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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