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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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금기시된 적이 있었다. 위정자는 성을 매춘이나 병과 연관지어 그것이 군중들로부터 부정한 것으로 인식되도록 하였다. 특히 귀족들 사이에 스캔들이 생기는 것은 위정자로서는 매우 불쾌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정자는 궁중들로부터 사회가 안정되어 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스캔들은 사회가 불안하다는 소문이 퍼지게 하여 위정자의 지위를 흔들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위정자는 성을 아예 금기시함으로써 귀족들의 스캔들에 관한 소문을 막았다.
심리학에서 외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것이 있다. 어린 아이가 처음 세상에 나와서 본 여성이 엄마이다. 그래서 엄마를 매우 좋아하며 잘 따른다. 나아가 “나, 커서 엄마하고 살 거야.”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여덟 살 이후가 되면 엄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보다 엄마와 더 가깝고 건장한 아빠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엄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고 효도로 승화하게 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아이가 성년이 되어 상대를 고를 때 엄마를 닮은 여성을 아내로 선택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신혼 부부 집에 가 보면 부부가 서로 닮아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아들이 엄마를 닮은 것과 마찬가지로 아내가 시어머니를 닮았으므로 얼굴이 비슷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서로 닮은 여자끼리 한 남자를 두고 더 사랑받으려고 하다 보니까 고부간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아는 여류 시인 H는 신혼 시절에 거의 평생을 과부로 산 시어머니가 부부 방에 와서 같이 잤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외디푸스 콤플렉스로 인해 일어난 일이다. 이를 보면 하나님이 그 자녀에게 배필을 정하여 주셨다는 말씀이 맞는 것 같다. 저희 부부도 결혼 후 삼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한결같이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 세월이 흐르고나서 생각해 보아도 주님이 어쩜 이리도 섬세하게 배필을 정하여 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를 보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성경에 이렇게 적혀 있다.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욥기> 12:10).  
<창세기> 38장에는 유다와 다말 이야기가 나온다. 다말은 윤리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한 여자이다. 그녀는 유다의 며느리로 들어가 첫 번째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리하여 유대 민족의 관례에 따라 남편의 동생과 결혼하였으나, 그도 역시 세상을 떠났다. 이에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가 있었으나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하였다(<창세기> 38:11). 그리하여 시아버지 유다는 다말에게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고 명하였으나, 셀라는 장성하여도 결혼시키지 않았다(<창세기> 38:11). 그러자 다말은 창녀 복장으로 변장하고, 유다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간 곳(딤나)의 길목에 있다가 그와 관계를 맺어 쌍둥이 아들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 이는 역사상 윤리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나, 다말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를 정도로 귀한 사람이 되었다. 성경 기록자는 세상 윤리로 보면 문제가 있는 다말을 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렸을까? 그것은 죄인이 구원으로 나아가는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 하여도 성 문제는 소돔과 고모라성 사람들의 문란함은 말할 것도 없고, 초기 기독 교회에서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이 문제를 바울은 어떻게 해결하였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신자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얼마든지 성적 욕망을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곡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6-28)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으므로, 신자가 구할 것은 성령이 우리 마음을 인도하셔서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이기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성적 욕망과 유혹으로 인하여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한 유혹이 신자의 믿음을 시험하고,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 구할 것은 무엇보다 기도이다. 기도를 통하여 성령이 우리 마음을 주관하시도록 하면 유혹이 물러가고 성적 욕망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성적 욕망을 개인의 의지로 다스리기보다는 성령이 욕망을 다스려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오늘도 많은 선남선녀들이 직업상이나 지인 관계로 만난다. 이때 구할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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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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