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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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구에 회자된 손석희 사장의 불미스러운 이야기가 몰고 온 엄청난 파장은 정말 이 시대의 지도자들에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정신이 번쩍 들만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아직은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고, 수사도 초기 단계이니 그 내막을 언급하는 것은 부당하고, 다만 추정에 추론을 통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의심을 받기에는 충분한 조건을 갖춘 이 일을 보면서 적잖게 실망하는 이들이 작지 않음을 보고 있다.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언론인들의 우상이 되고, 그의 보도에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냈던 사람들은 물론 그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졌던 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날을 세웠다. 손 사장은 모든 소문과 보도를 찌라시로 일축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지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는 것은 그 만큼 이 일이 가진 파괴적 폭발력 때문일 것이다. 이 일이 사실로 밝혀지면 발생하게 될 사회적 파장에 대해 적지 않는 고민이 있는 것이 식자층의 걱정일 것이다.
대부분의 유명인이 그러하듯 문제가 터지만 강력하고도 단호한 어조로 대응하고, 이어 법적 대응으로 그 일이 더 이상 확산되어 사회적 문제로 확장되지 않도록 차단하고, 가급적 법적에서 그 시시비비를 가리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래서 그들을 더욱 더 “절대로, 전적으로”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인다. 이번에도 손석히 사장은 여지없이 이런 길로 가고 있다.
이보다 앞서 발생한 손혜원 의원 사건에서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음을 보고 있다. 그는 0.001%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표현을 쓰는 순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일그러졌다. “저 사람도 역시 그렇구나”라며 그의 유죄를 확신한 것이다. 지나친 긍정은 부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지 말고 차라리 “부족한 사람이지만 한번 따져 봅시다.”라고만 이야기했다면 기다려라도 보겠는데 그의 단호한 일도양단의 어법이 그 인내초차도 잘라내고 말았다.
그런데 어쩌면 목회자들이 가장 쓰는 말이 “절대로, 전적으로, 혹은 0.001%”가 아닌가? 절대주요 창조주인 하나님의 절대진리를 선포하고 가르치는 목회자가 당연히 이런 말을 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유일신의 유일구원의 교리가 더욱 더 이런 단호를 선호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목회자들이 설교와 성경공부의 영역을 넘어서서 모든 일상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절대적 신임과 가르침에 대한 전적인 신뢰, 그리고 자신만의 거룩성을 내세워 0.001%의 완벽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어느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한 목사님이 강단에서 하도 자기 자랑만 하기에 장로님들이 노회장에게 가서 대신 좀 말려달라고 부탁했더니, 그 목사님이 우연한 기회에 자기자랑만 일삼던 그 분과 식사를 하면서, “요즈음 목사들 중에서 강단에서 자기 자랑만 늘어놓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라고 에둘러 말했더니, 그 목사님이 무릎을 치며 하시는 말씀,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도대체 왜들 그렇게 겸손하지 못한지 모르겠어. 감히 강단에서...!” 이런 발언에 노회장 목사님은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말았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연설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본인은”이었고 히틀러와 무솔리니 역시 “나”라는 주어를 그렇게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이들은 심리적으로 자신들의 힘과 권력을 과시하려는 욕심 때문이라는데, 이런 의식이 우리 교회와 목회자들에게는 없을까? 절대진리, 절대주를 선포하는 우리들이 어느 시점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절대화하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손석희 사장과 손혜원 의원 사태를 보면서 우리 목회자들이 얼마나 말과 행동에 조심해야 하는 지를 더욱 절박하게 느낀다. 성도와 교회를 위하여 목회자의 입은 더 무거워야 한다. 더 이상 세치 혀로 한국교회와 젊은이들을 힘들게 하는 못난 종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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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와 전적으로’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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