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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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작가 반도마사코(坂東眞砂子,1958-2014)가 1977년에 <나오기상(直木賞)>을 수상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일본사회의 답답함을 벗어나고 싶다”며 다히치의 오두막에서 채소를 가꾸며 자급자족을 즐기고 있었다는데, 2006년에 <새끼고양이 죽이기>라는 글로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었다.    
“3마리의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데, 새끼가 태어나면 바로 죽였다”하고 고백한 것이다. “이따위 글이 어떤 비난을 가져 올지는 알고 있다....나는 새끼고양이를 죽이고 있다. 집 근처에 있는 벼락 아래가 빈터인 지라, 태어나면 바로 던져 버린다.”
기르는 고양이 3마리에게 피임수술을 시키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암컷들의 삶이란, 발정하면 교미해서 새끼 낳는 일”이고 보면, 인간이 그들에게 피임수술을 가하는 짓거리는 그들의 본질적인 삶을 빼앗아 버리는 노릇“이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인간이 제멋대로 제 형편만 고려해서 고양이를 위협하는 것이라 했다. 멀쩡한 짐승의 난소와 자궁을 제거해버리는 노릇이, 그래서 발정기의 스트레스를 없애자는 짓거리가, 고양이에게나 사육하는 이에게 두루 이득이 된다는 판단이, 진정 고양이게도 행복이 될 수 있느냐하고 묻는다.  
“다히치섬, 집 언저리는 인가가 드물고 풀이 무성한 빈터와 숲으로 펼쳐져 있다. 들고양이, 들개, 들쥐의 시신이 예사로 널려 있는 터에, 새끼고양이의 시신이 더 해진들 인간의 생활환경에는 피해가 미치지 않는다....대신 새끼 고양이가 들고양이가 되는 날이면 인간의 생활환경을 해치게 마련. 기를 수 없는 새끼 고양이는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도록 수술한다는 생각에 이의를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갓 태어난 새끼고양이를 죽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종(種)을 죽이느냐 새끼 고양이를 죽이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독자들의 분노에 불을 지핀 것은 이 대목이었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려는 바는 “사람이 다른 생물에게 피임수술을 시킬 권리가 없듯이, 태어난 새끼를 죽일 권리 또한 없다”에 있었다. 새끼고양이를 들고양이화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책임 또한 자각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고 묻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다른 생물의 ‘삶’에 대해서 올바른 일 따위를 해줄 수는 없다. 어디선가 모순과 불합리가 움트게 마련”이기에 차라리 “새끼고양이 죽이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한 연구자에 따르면, 3마리의 암고양이에게 피임수술을 가하지 않는다면, 해마다 적어도 수십 마리의 새끼고양이를 죽여 왔을 것이란다. 고양이 피임수술의 목적에는 번식을 방지하자는 목적 말고, 들고양이 70%가 감염되고 있다는 “고양이 에이즈”나 “고양이 백혈병”에 감염되는 것을 예방하자는 목적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 현실적으로 일본에서는 많은 자치단체들이 기금을 내어 반려동물의 피임수술을 장려하고 있다지만, 들고양이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연간 30만 마리 이상의 개와 고양이가 보건소에서 안락사 처리되고 있다고 했다.  
2006년에 그녀가 썼다. “나는 사람이 두렵다. 사람 앞에서는 긴장하게 된다.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고양이를 기른다. 사람에게 가야할 애정을 고양이에게 쏟음으로 간신히 하찮은 애정세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갓 태어난 새기 고양이를 죽일 때, 나 자신도 죽이고 있다. 그게 아파 견딜 수가 없다.”  
나치스가 동성애자에게 단종수술을 강요한 일과 일본이 한센병환자에게 그렇게 한 일을 회상시키면서, “타자에 의한 단종과 불임수술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세는 인간이 인간에의 단종 불임수술과 연결된다. 반려동물에게 불임수술을 가하면서 ‘이것이 정의다’하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사람에게 나는 의문을 제공 한다.” 하고 말했다.  
그녀의 글을 읽은 작가 히가시노(東野)는, 자신도 당연한 듯 고양이에게 거세수술을 시켜왔다면서, “나는 ‘새끼고양이 죽이기’는 하지 않았지만, 한 마리의 고양이를 계속 학대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하고 말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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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고양이 죽이기와 거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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