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이들의 사상은 역사적 그리스도교에 지금도 간간히 나타나고 있다



니케아 이전 시대의 분파들
그리스도교의 탄생과 함께 초대교회에 들어온 이단들이 있었다. 시대별로 보면, 에비온주의, 영지주의, 몬터너스주의, 노바티아누스주의, 마니교 등이 그들이고, 도나투스주의는 교회의 권징 문제로 벌어진 논쟁으로 분리된 분파이다. 이처럼 수많은 이설(異說)들이 정통주의가 확립되기 전에 교회를 혼란시켰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니케아 시대를 지나며 그리스도교의 복음에서 일탈한 것이 확인되어 역사적 그리스도교에서 소멸해 갔다.

1. 에비온주의(Ebionites)
에비온파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유대교적 그리스도교였다. 이 이름은 ‘가난한’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에서 유래했다. 에비온파는 자신들이 ‘가난한’ 그리스도와 그 분의 가난한 제자들의 참된 추종자들로 간주했으며, 자신들에게만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약속된 복이 있다고 생각했다.
에비온파는 유대교 바리새파의 율법주의를 구현하고, 모세 율법의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유효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율법의 준수와 할례를 반대하는 사도 바울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인일지라도 할례를 받고 율법의 모든 의식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다(행 15:1).
그들은 예수는 약속된 메시야, 다윗의 아들, 최고의 입법자임에는 틀림없지만, 모세와 다윗처럼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인간이다. 그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아들로 선택되어 영원한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이다. 바울은 이단이며 배교자이고, 그가 쓴 서신들은 폐기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곧 다시 오셔서 지상의 예루살렘에 권좌를 설치하고 천년동안 통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도 바울의 갈라디아서는 바로 이 에비온파에 대한 경계이다.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 뿐이라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갈 6:12, 13).
이들은 오늘날 ‘에비온파 복음’이라고 불리우는 독자적인 복음서를 갖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마태복음의 발전된 형태이다.

2. 영지주의(Gnosticism)
영지주의는 처음에 이교철학에서 기독교로 주입된 특이한 사상이다. 영지주의는 당시의 그리스 철학, 문학, 종교에까지 광법위하게 영향을 미쳤다.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을 대다수 그리스도인들과 구분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본질적으로 더 고등한 지식으로 이루진다고 간주했고, 자신들은 보다 높은 영적 지식, 즉 자신들을 비밀스럽고 철학적이며 영적인 사람들로 만들어 준다고 믿고, 영혼과 육체만을 지닌 단순한 사람들을 경멸했다.
영지주의의 공통된 특징은 하나님과 물질이 영원히 대립된다는 이원론(二元論) 체계이다. 그러므로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세계는 악의 원리가 거하는 곳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께로서 나올 수 없다. 만약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면 하나님이 악을 지으신 셈이 된다. 그러므로 구원은 빛의 영혼이 어두운 물질의 사슬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각할 수 있고 현상적인 세계로부터 감각되지 않는 이상적 세계로 돌아가게 하는 중보자이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소수의 무리에게 ‘그노시스’(gnosis, 靈知)를 전달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상적 세계(하나님 나라)와 연합을 얻기 위해 노력하도록 능력을 주는 존재이다.
영지주의는 초대교회부터 기독교의 정체성을 파괴할 정도로 이질적 사상을 혼합하여 그리스도교를 변질시켰다. 그로인해 또 다른 분파들이 생겨나고, 수많은 학파들도 생겨났다.
그들이 남긴 저서들은 1946년 이집트 나그 함마디 근처에서 발견된 콥트어로 기록된 사본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은 진리의 복음, 레기노스의 서신, 도마복음, 빌립복음서, 요한 외경, 아담묵시록 등이다.

3. 마니교(Manes)
마니교는 3세기 페르시아에서 활동한 철학자 마니(Mani)에서 유래한다. 마니는 유대교적 영지주의에 속해 있었으나, 다른 영지주의파들과는 달리 19세와 24세 때 신(神)으로부터 새로운 종교를 계시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보낸 선지자이자, 그리스도가 약속한 보혜사라고 주장했다. 그는 ‘근본 원리들에 대한 서신들’이라는 책을 남겼는데, 거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마니는 성부 하나님의 섭리에 힘입어 이 서신들을 쓴다. 이 서신들은 영원하고 생명이 있는 근원으로부터 온 구원의 말씀이다”라고 주장했다.
마니는 처음에 페르시아 왕 샤푸르 1세 궁정에서 총애를 받았으나, 당시 페르시아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던 마기교(Magians)의 사제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궁정에서 피신해 인도 동부와 중국으로 가 불교를 접했다. 270년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와서 교리를 가르치다가 227년경에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박해를 받아 산채로 가죽이 벗겨진 채 죽었다. 그가 비참하게 죽은 후에, 그의 교리는 살아남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중앙아시아, 메소포다미아, 북아프리카, 시칠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중국 등으로 널리 퍼졌다.
마니교는 이원론과 범신론과 영지주의와 금욕주의 요소들이 두루 혼합된 종교이다. 마니교의 신학은 빛의 왕국과 어둠의 왕국 사이의 철저한 대립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에서 온 것이다. 또 마니교는 엄격한 금욕주의를 드러낸다. 이것은 불교적 영향이다.
마니교의 기독론은 하나님이 육신이 되셨다는 사상을 철저히 배격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사도들이 곡해해 유대교 정신으로 편집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약속한 다른 보혜사인 마니가 비로소 본래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되살려 놓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언어생활과 식생활에서 순결을 위해 일체의 육류와 자극성 있는 음료를 삼가며, 곡물과 채소만 먹고, 현세적 재산과 물질을 갖지 않으며, 자연에 두루 스며 있는 신적인 빛의 생명을 신성하게 여기고, 또 결혼생활은 영혼을 더립히는 행위임으로 독신생활을 선호했다.

4. 도나투스주의(Donatism)
도나투스파는 교회의 권징 문제로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일어난 분열이다. 원인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311년) 때에 신앙을 배교한 고위 직분자 처리 문제를 놓고 벌어진 일이다. 박해 당시 누미디아 대주교 관할에 속한 카사이 니그라이의 주교 도나투스(Donatus)가 이끈 강경파는 순교를 각오하고 황제의 박해에 맞서 싸웠다. 그들은 위협을 피해 도주하거나 성경을 당국에 내어주는 행위를 반역적인 행위로 간주했다.
그런데 박해가 끝나자, 그들은 신자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들, 특히 박해 때 신앙을 부정하거나, 박해자에게 교회가 보존해온 성경을 내어준 배교자들을 예외 없이 출교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교회의 일에 세속 권력의 개입을 철저히 배격했다. 반면에 주교 멘수리우스와 그의 차부제와 후임 주교 카이킬리아누스를 필두로 한 온건파들은 배교자들이 처했던 상황을 이해하고, 교회의 권징에서 신중할 것을 요구했다.
313년 밀라노 칙령이 내려지고 박해가 중단되자 카이킬리아누스를 카르타고 주교로 임명한 것이 발단이었다. 도나투스파는 그를 주교로 승인하기를 거부했다. 이에 강경파에 속하는 70명의 누미디아 주교들이 카르타고에 모여 카이킬리아누스를 면직하고, 독서자 마요리누스를 주교로 선출했다. 315년에 마요리누스가 죽자 동명이인인 다른 도나투스가 그 자리를 이었다. 그는 뛰어난 재능과 열정적 웅변력을 지닌 자로 존경을 받았다.
그런데 양 진영은 해외의 지지자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고 분열이 일어났다. 이에 도나투스파는 로마 황제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판결은 카이킬리아누스에게 유리하게 내려져 그가 카르타고의 합법 주교로 인정을 받았다. 도나투스파가 강력히 항의하자 314년 황제는 다시 이를 교회재판에 위임했다. 교회의 판결도 전과 같았다. 도나투스파는 그것 역시 불복하고 황제에게 직접 재판을 받겠다고 요청했다.
황제는 321년에 도나투스파에게 완전한 신앙과 예배의 자유를 허용하는 칙령을 내렸다. 이 도나투스파의 논쟁에서 저 유명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리스도의 진정한 몸과 혼합된 몸’을 구분하는 교회론이 나왔다. 도나투스파의 분열은 일종의 교권 투쟁으로, 교회의 순결주의와 절충주의 간의 논쟁이었다.
도나투스파는 가톨릭과 별개로 7세기까지 존속했으나 아프리카 교회 전체가 이슬람 사라센의 정복으로 사라졌다.
이 논쟁은 오늘날 현대교회에서도 때때로 되풀이 되고 있다.

4. 기타 분파들
몬타누스주의(Montanism), 시몬파(Simonians), 니골라당(the Nicolaitans), 케린투스(Cerinthus), 바실리데스(Basilides), 발렌티누스(Valentinus), 마르키온(Marcion),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카르포크라테스(Carpocrates), 타티아누스(Tatia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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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그리스도교 분파 이야기/강 춘 오 목사(발행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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