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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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민중속설로 올 기해년(己亥年)인 2019년을 황금돼지 해라고 한다. 또한 언제적부터인지 돼지를 다산과 재복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가히 문질문명의 첨단시대에 와서도 삶의 팍팍함은 여전하여 황금돼지라는 유토피아를 찾게 되는 것 같다.
12년 전, 정해년(丁亥年)을 맞았을 때에도 백년 만에 맞이하는 황금돼지의 해라고 돼지에 대한 설화와 예찬이 대단했었다. 황금돼지모형의 금 폐물을 장만하려 들었고, 저자거리의 가게나 집집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황금색 돼지저금통이 금고처럼 버티고 있었다. 더욱이 자녀를 돼지의 해에 낳게 하려고 연전에 결혼식을 올렸고 그로인해 출생한 돼지띠 아이들이 5만 여명이 더 출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오래전 제주도를 여행하다가 재래식 돌담 우리에다 몸집이 작은 검정돼지를 사육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안내자는 사람의 인분을 먹고 자란다는 제주도의 토종흑돼지라 했다. 작지만 비계가 없고 육질이 좋아 그 맛이 일반 사료로 사육되는 여늬 돼지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사육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것은 단순한 관광용이고, 명맥을 잇기 위해 산자락 일정한 곳에서 놓아 기르는데 맛이 좋아 수요대로 공급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해방 후 일본에서 나와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용두리 자미마을에 있는 큰외가집을 찾아 갔을 때를 떠올리게 된다. 밤에 변을 보려는 나를 이모님이 호롱불을 들고 안채 건너 편으로 데리고 갔다. 일본에서 살 때는 안방과 건너 방 사이로 연결된 곳에 있는 변소를 사용했는데 낯설고 캄캄한 밤이라 오금이 저리게 무서웠다. 인기척이 나서인지 어둡고 음습한 곳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이모가 시키는 대로 2층처럼 된 곳으로 올라갔을 때 아래쪽에서 새까만 것들이 꿀꿀거리는 게 얼핏 보였다. 희미한 불빛에 기괴하게 생긴 것들의 움직임이 무섭게 느껴져 어머니를 부르며 뛰쳐나와 밖에서 일을 보고 말았다.
어머니께서 내가 무서워했던 것들은 집집마다 기르는 돼지라는 순한 짐승이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간밤에 괴상하게 보였던 것이 어떻게 생긴 것들인지 자세히 보고 싶은 생각에 어머니를 따라 헛간으로 갔다. 어른 한길보다 더 깊게 파인 반 지하 형태의 넓은 공간에는 검불같은 짚더미가 쌓여있었다. 인기척이 나자 새까만 것들이 그 속에서 꿀꿀거리며 기어 나왔다. 어머니가 곁에 서 있고 밝은 대낮이라 안심하고 똥을 누었다. 개만큼 한 흑돼지 네 마리가 짧고 가는 꼬리를 흔들어대면서 위에서 떨어지는 대로 받아먹으려고 다투며 옆엣 놈 등에 묻은 것을 서로 핥아먹으려 밀쳐대고 꿀꿀대는 것들은 처음 보는 대단한 구경거리였다.
돼지들을 구경하는 재미로 외갓집에 있는 동안 매일 헛간에서 일보기를 즐겼다. 개는 잔 밥을 먹고 마당에서 집을 지키고, 돼지는 헛간에서 변을 먹고 살면서 거름을 만드는 짐승이었다. 헛간 돼지들에게 넣어준 짚검불이 많이 더러워졌다 싶으면 거름으로 쓰려고 밖으로 꺼내고 새것을 넣어주는 것도 열심히 지켜보았다.
후일 우리 집에서도 토종흑돼지를 길렀는데, 외가에서처럼 헛간에서 기르지 않고 그냥 나무와 돌담을 쌓아 만든 우리에다 길렀다. 어머니가 아침저녁으로 밥찌꺼기가 들어 있는 구중물에 쌀 등겨를 타서 넣어주었다. 나는 냇가에서 시금치처럼 생긴 풀을 베어다 주고 짓뭉개며 먹는 걸 살펴보는 게 재미있었다.
그 시절 명절 때나 집안 잔치날엔 동네에서는 돼지를 잡았다. 동네아이들과 구경을 하면서 형들이 돼지 오줌보를 얻어 바람을 불어넣어 공처럼 차고 놀았다.
돼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1969년 파월 당시 베트남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아주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돼지들이 많이 크지를 않아 우리나라의 중돼지 정도가 보통이었는데 거래되는 값이 큰 황소 한 마리보다 더 비쌌다. 작전이 끝난 후에 나트랑 해변에 있는 휴양소를 찾아 통돼지를 바비큐해서 맥주를 마시며 휴식을 가졌던 때의 장면이 스쳐간다.
전원목회를 할 때 이웃 노인장께서 ‘사람이 제 똥을 먹지 않으면 죽는 법이여’ 라고 일러주었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돼지는 못 길렀지만 인분과 개똥을 섞은 거름으로 황금빛 나는 호박을 수확해 나누어주며 맛있게 먹었던 시절을 추억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쾌적한 주거환경과 그에 따른 식생활 변화로 천지가 개벽한 것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서구화된 식생활에 혼탁해진 공기와 미세한 오염물질에 잠식된 식재료 때문에 우리의 몸에서 나오는 대소변을 씻어서 버리고 있다. 가난했었지만 돼지가 인분을 먹던 시절의 순수함이 마냥 그리워진다.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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