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1453년 콘스탄티노플 이슬람에 함락되자 동방교회 상징 모스크바로 옮겨가



러시아 정교회            
러시아에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것은 988년 끼예프 루시의 블라디미르 대공이 콘스탄티노플로부터 동방교회를 받아들임으로써 끼예프 루시 전체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데서 비롯된다. 여기에 얽힌 일화가 있다.
끼예프 루시 귀족들은 서방에도 오래전부터 그리스도교란 것이 있고, 남쪽에도 이슬람이라는 유일신 종교가 발전하고 있는데 자기들만이 무속신앙에 젖어있다고 생각해 블라디미르에게 우리도 좋은 종교를 받아들이자고 간언했다. 이에 블라디미르는 현자(賢者)들을 메디나의 이슬람 예배와 로마의 가톨릭 미사,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의 동방교회 예배에 참관토록 했다. 그들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이슬람 예배에는 슬픔만이 있었고, 가톨릭 미사에는 영광을 찾아 볼 수 없었으며, 동방교회의 성 소피아 대성당에서 1만여 개의 촛불이 휘황찬란하게 밝혀진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된 예배의식에 감탄했다고 보고했다.
“소신들은 그때 천국에 있는지 지상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지상에는 그러한 광휘와 아름다움이 있을 수가 없기에 제대로 묘사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곳에서는 신께서 인간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것과 그 사람들의 예배의식은 다른 어떤 민족의 예배의식보다 아름답다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감동을 받은 블라디미르 대공은 동방교회 선교사들을 초청했고, 이듬 해 콘스탄티노플에서 온 성직자들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비쟌틴 황제의 여동생 안나와 결혼함으로써 끼예프 루시와 비쟌틴 제국이 정치, 종교적으로 하나가 되었다.

1. 제3의 로마, 모스크바
러시아인들에게 하나님은 진리와 믿음의 신(神)일뿐 아니라 아름다움의 신이었다. 그리하여 신앙이란 곧 아름다운 것이라는 등식이 생겨난 것이다. 아름다움은 곧 진리였으며 진리는 곧 선한 것이었다. 이로써 러시아는 비쟌틴 문화를 받아들이고, 문자는 9세기 중엽에 비쟌틴 황제의 특명을 받고 중부 유럽에 파견된 두 명의 선교사 성 키릴루스와 성 메토디오스가 불가리아 방언을 토대로 만든 슬라브 문자를 채용했다. 그때까지 러시아에는 문자가 없었다.
러시아교회는 처음에 콘스탄티노플 교구에 예속되었다가, 1037년에 끼예프에 성 소피아 대성당을 짓고 총대주교좌 성당으로 지정했다. 이로써 러시아교회는 콘스탄티노플로 교구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교회로 확립되었다.
이후 러시아는 1237년부터 1480년까지 250년간 몽고(타타르)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1326년)에 총대주교좌가 끼예프에서 모스크바로 옮겨오면서 모스크바는 제3의 로마라는 명성을 얻었고, 국호 또한 루시에서 러시아로 변경했다.
1453년 5월 29일,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의 젊은 슐탄 메흐메드 2세에 의해 함락되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존재했던 비쟌틴 제국은 1123년의 역사를 마감했다. 이에 콘스탄티노플의 소피아 대성당 총대주교좌에 있던 동방교회 쌍두 독수리 문양(깃발)이 갈 데가 없어 모스크바로 옮겨갔다. 러시아 정교회가 동방교회의 정통성을 이었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2 로마로 불리던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투르크(터키) 함락되고(1453년), 러시아에서 타타르(몽골) 지배가 1480년에 종식되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두 사건이 자연히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정교회는 인간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 진실로 참된 존재가 되며, 예배 안에서 자신의 완전과 자아 성취를 발견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정교회의 성찬예배는 러시아인의 시, 예술, 음악에 영감을 주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몽고와 터키, 또 공산주의의 지배하에서도 러시아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2. 러시아교회의 성사(聖事, 성례)
러시아어로 성사는 ‘신비’(tainstvo)라고 한다. 물질계의 상징을 통하여 신의 은총이 인간에게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성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 속에서 전 인류가 구원되는 것을 지향하며, 지상에서 성사를 집전하는 것은 사제이지만 그 직접적인 집전자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러시아 정교회의 예배의 핵심은 성찬예배이다. 성찬예배의 참여자들은 이 의식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에 동참하고 성체와 성혈을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을 실천한다. 러시아 정교회의 7성사는 다음과 같다.
△세례성사: 세례성사는 가장 기본적인 신비로, 세례성사를 받는 사람은 죄에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견진성사: 세례성사가 새 생명의 시작이라면, 견진성사는 새 생명의 완성이다. 사제는 ‘미로’라는 기름을 신자의 이마, 눈, 코, 입술, 손, 발에 발라준다.
△성체성혈성사: 성찬예배에서 거행되는 모든 전례의 중심이다. 신자는 영성체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개인적으로 자신 안에 맞아들이는 것이다.
△고백성사: 세례를 통해 다시 태어난 인간이 자신의 삶 속에서 저지르는 죄를 사제에게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로부터 사함받는 것이다.
△신품성사: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부름받은 사람들이 신품성사를 통해 성직자가 된다. 기혼자나 미혼자 모두 사제가 될 수 있다.
△결혼성사: 남녀가 사랑으로 결합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은 놀라운 신비이다. 정교회는 이 소중한 결합을 축복해 준다.
△성유성사: 임종을 앞둔 사람이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기름과 기도로 치유하고 위로하는 성사이다.   

3. 러시아교회의 매일 기도의식
정교회의 성무일과는 시간별로 나누어진 매일 기도의식으로 진행된다. 매일 기도의식은 ‘만과’라고 부르는 저녁 기도에서 출발한다. 해질 무렵 시작되는 만과는 그 다음 날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만과: 주님의 놀라우신 창조를 경탄하며 자비를 호소하는 기도이다.
△석후과: 매일 밤에 드리는 기도로, 이 밤에 나의 육체와 영혼을 그리스도의 품속에 맡기는 기도이다.
△심야과: 우리 영혼이 한밤중에도 깨어 있어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게을리 하지 말 것을 깨우치는 기도이다.
△조과: 하루를 새롭게 맞이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기도이다.
△제1시과: 오전 6시에 봉헌하는 기도로, 암흑에서 빛을 발하신 하나님의 창조를 감사하는 기도이다.
△제3시과: 오전 9시에 봉헌하는 기도로, 사도들에게 성령의 강림을 상기시키는 기도이다.
△제6시과: 정오에 봉헌하는 기도로, 주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음을 상기하는 기도이다.
△제9시과: 오후 3시에 봉헌하는 기도로, 주님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기도이다.

4. 러시아교회의 개혁과 분열
러시아교회에는 17세기 중반에 옛 의식을 고수하려는 전통고수파와 시대에 맞게 고치려는 개혁파 사이에 혼란도 있었다. 러시아교회는 전통적으로 주일예배를 전례에 따라 8시간 내지 10시간동안 드렸다. 이를 ‘단성제’(單聲祭)라 한다. 이를 5시간 정도로 줄인 것이 ‘다성제’(多聲祭)이다.
그런데 소위 다성제는 성찬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사제의 선창과 부제의 호칭기도, 성가대의 응송과 독서자의 영창 등 여러 기도문이 동시에 발성되어 몹시 혼란스러웠다. 신도들은 기도와 성가의 내용을 알아듣기 어려웠고, 예배 중에 옆사람과 잡담을 하거나 소곤거리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
또 모스크바 총대주교 니꼰이 1652년 러시아 전례양식을 그리스식으로 바꾸면서 성호를 그을 때 두 손가락으로 하던 것을 세 손가락으로 할 것과, 두 번의 알렐루야 대신 세 번의 알렐루야를 부르도록 했다. 이 조치에 무수한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니꼰의 개혁에 반발해 조상 대대로 지켜온 의식을 바꾼다는 것은 배교 행위나 마찬가지라며, 이에 항의하여 약 2만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스스로 불길에 뛰어들어 죽었다. 이들을 구교도라고 부른다. 결국 구교도는 이단으로 몰려 모두 파문 당했다.
이들은 러시아 정교회를 떠나 분리파가 되었는데, 그들 중의 일부는 신학적으로는 정교회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다분히 비정교회적인 이단으로 발전해 갔다. 이 외에도 성직자의 존재를 들러싸고 갈라진 ‘사제파’와 ‘무사제파’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5. 러시아 교회의 이단들
러시아 교회의 최초의 이단은 서쪽 노브고르드라는 도시에서 14세기 말에 시작된 ‘삭발파’(스뜨니골니끼)이다. 삭발파는 주교가 성직자를 서품할 때 그 비용을 징수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이를 ‘성직매매’라고 주장하면서 그런 식으로 서품을 받은 성직자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그들의 주장은 점점 더 발전해 결국 세례성사를 제외한 모든 성사를 부정하고, 끝내는 내세와 부활을 부정하는데까지 나아갔다.
또 15세기에는 ‘유대주의파’라는 새로운 이단도 생겨났다. 유대주의파는 신약의 삼위일체는 구약의 유일신 개념에 위배되며, 구약의 메시아는 종말 직전에 오시기로 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는 메시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콘, 십자가, 수도생활, 전례, 단식, 그리고 제도로서의 교회 전체를 부정히여 비기독교 집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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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그리스도교 분파 이야기/강 춘 오 목사(발행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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