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1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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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은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 사이에는 언약이라는 관계 안에서 권위와 질서가 있는 일종의 조직체이다. 위로는 하나님이 계시고, 다음에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인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는 만물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권위 체계를 우리 가정에서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남자로부터 여자를 만드시고 남자와 여자로 가정을 세우셨다. 하나님의 창조 과정을 살펴보면 여자의 창조는 창조의 climax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피조물은 무에서 창조하셨지만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만드셨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어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창세기 1-2장의 창조 기사의 막이 내린다. 결국 하나님의 창조는 가정을 그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정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정도 언약적 권위 체계와 질서를 가진 조직체로 만드신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하나님께서 그가 창조한 세상을 그를 대신하여 다스릴 우두머리요 대리통치자로 아담을 세우셨듯이, 그가 세우신 가정에서도 남자를 머리로 한 가족을 이루게 하고 가정을 다스리는 책임자로 세우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가정은 아담을 머리로 혈연공동체이자 언약적 공동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언약적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의 시작인 남편과 아내의 결혼이 바로 계약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11:3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니,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여자의 머리 는 남자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기를 원한다.”
이 말은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오,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나 남자를 머리라 말하고 있는 데, 이들은 다같이 여러 지체를 가진 몸이라는 것을 전제한 말이다. 그리스도라는 몸에는 하나님이 머리이고 더불어 다른 지체가 있으며 남자는 그 지체중의 하나이다. 마찬가지로 남자의 몸에는 그리스도가 머리이며 그 안에 여자를 비롯한 다른 지체들이 있다. 따라서 남자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머리가 되어 여러 지체를 가졌는데 여자는 그 지체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따라서 남자는 이중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인 동시에 여자의 머리이다. 남자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만물의 일원인 동시에 자기를 머리로 하는 가정, 곧 가족의 우두머리라는 것이다.
바울은 이와 같은 관계와 질서를 설명하기 위하여 고전 11:7에서 남자를 하나님의 형상이며 영광이라고 말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고대 근동 세계에서는 지상의 왕을 신의 형상이라고 지칭했다. 왕이 천상의 신을 대신하여 신민을 다스리는 자로 생각한 때문이다. 창세기 1:26-28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창조하신 만물을 다스리는 대리통치자로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신다(시 8:6). 이와 같은 원리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남자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바로 남자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가정의 우두머리요 대표자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가정을 다스리는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형상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오히려 남자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여자가 있으므로 남자가 영광스럽게 된다는 뜻이다. 성경애서 다스린다는 의미는 섬기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남자는 가정의 우두머리요 하나님 앞에서 가정의 대표자로서 가정를 지키고, 보호하고, 가족들을 부양하고, 돌보는 자이다. 남자는 하나님 앞에서 가정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으로 가정 예배를 인도하며,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이다. 이러한 모든 일은 여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고, 그래서 여자를 종을 부리듯이 부려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바울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다.  또한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 ... 그러나 주 님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을 수 없고, 또한 여자 없이 남자가 있을 수 없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또한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 님께로 부터 났다.” (고전 11:8-12)
이 말씀의 의미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힘의 우열아나 서열을 논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정은 혈연으로 맺어진 유기체이자 언약을 통하여 세워진 언약공동채로 하나님께서 새우신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하나님 앞에서 머리가 있어야 하고 대표자가 있어야 한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고, 가족의 구성원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다 동등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 앞에서 가정의 대표자가 될 수는 없다. 여자가 없는 데 남자가 대표자가 될 수도 없고, 가정과 가족이 성립될 수도 없다. 우리 몸의 모든 지체가 다 각각의 역할이 있고 필요하듯이 가정에도 역할이 있고 필요가 있다. 우리 몸에 얼굴이 있듯이 남자는 가정이라는 몸의 얼굴이다.
이상을 살펴볼 때 가정은 언약적 체계를 갖추고 위계적인 질서가 있는 일종의 유기체적 성격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가정은 하나님 앞에서 온 가족이 아버지를 머리로 하는 언약적 연대성을 가진 운명 공동체이다. 가정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을 그의 형상대로 세우셔서 그를 대신한 만물의 왕으로 세우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창조하시고 남편을 가정의 왕으로 세우시고 가족들을 섬기는 대표자의 사명을 맡기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세상에 하나님-사람-만물 사이에 질서가 있듯이 가정에도 하나님-남편-가족이라는 질서가 있다. 가정의 질서는 절대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바로 이 질서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결과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에게 “네 하나님이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그가 주신 땅에서 그의 생명이 길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오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온 땅의 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다. 그래서 성경은 이 땅을 “기업의 땅,” 혹은 “유업의 땅”이라고 칭한다..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부자 관계로 전제하는 말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시고 시내 산에 언약을 맺었다. 이 언약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양자 삼으시고, 이들에게 가나안 땅을 아들에게 주시는 유산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시내 산 언약을 하나님께서는 왕과 백성의 관계, 혹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이해하고 해석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설명한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 “에브라임은 내 아들, 내 장자이다. 내 아들을 보내라.” 고 말씀하신다. 말하자면 여호와께서는 고대 근동 사람들이 자식이 없을 경우 노예들을 양자로 삼고 입양언약을 맺는 풍습을 빌어,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해 내어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으시는 데, 이것을 일종의 입양 언약으로 비유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이스라엘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유산으로 주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기업의 백성, 이들에게 주신 땅을 기업의 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땅에서, 무엇보다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며 살아야 할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잘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오래 오래 복스럽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자이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입양 관계를 철회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한 이스라엘은 결국은 망했다. 아시리아나 바빌로니아에게 망한 이스라엘은 포로가 되어 이스라엘 땅에서 아시리아나 바빌로니아로 끌려가 그들이 살던 땅을 빼앗기게 되었다. 물론 이스라엘의 이 비극적인 멸망을 부모를 공경하지 못한 때문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말하자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시내산 언약이고, 이 언약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는 것이며, 그 경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를 자아내서 결국 그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열 개 중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계명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십계명의 두 부분, 즉 1-4계명은 하나님 사랑에 관한 것이라면 5-10계명은 이웃 사랑,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도리와 규범에 관한 계명이다. 윤리와 도덕에 관한 계명이다. 십계명은 1-4계명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5-10 계명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 부모 공경에는 사람과의 관계, 곧 도덕과 윤리를 다루는 계명에 있어서 첫 번째 계명이다. 말하자면 하나님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관계성이 부모와의 관계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에베소 6:2에서 바울은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것이 인간인데, 이 땅이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한된 시간 안에 이 땅에서 살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이 땅에서 장수하려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부모는 부모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부모이기 때문에 순종하고, 존경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바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식된 도리이다. 아무리 부모가 마음에 안 들고, 부족하고, 부끄러운 짓을 많이 할지라도, 부모를 무시하고, 멀리하는 자는 그 생명이 길지 못한다. 부모를 무시하고 멀리하는 사람치고 잘 되는 사람 없다. 부모를 공경하고 공양하라는 가르침은 삼강오륜에서도 가르치는 윤리의 대 강령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함은 그의 아버지 노아를 욕되게 한 사람이다. 그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다. 사사시대의 이방 여자 룻은 오갈 데 없는 그의 시모, 룻을 죽기 까지 따라서 나서서 남의 밭에 나가서 이삭을 줍고, 일꾼들이 먹다 남은 밥을 얻어와 시모를 공양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보아스라는 남편을 주시고, 그의 후손 가운데 다윗이 나왔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그의 제자 요한에게 부탁했다. 그의 공생애를 마치며 최후로 하신 일, 그의 사역 (His last ministry)이 그의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었다. 고령화 사회, 노령의 인구가 급팽창하는 한국 사회에서 노인 복지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 기독교인은 성경에 나오는 선배들의 부모 사랑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한다. 늙은 부모를 양노원에 보내고 그 비용을 부담한 것이 부모 공경의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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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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