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지난 11월 11일 국제독립교회연합회가 주최한 ‘제8회 전 회원교육’에서 정일웅 목사가 발제한 ‘현 시대 속 목회자의 나라사랑’를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주
다시 정리하면, 사도바울은 세상정부의 정치권력은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며, 그것은 근본적으로 천지만물의 주권자이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하신 것이며, 또한 하나님은 이와 같이 세상정부를 통하여 인간사회의 질서가 지탱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1-2), 그리고 국가의 사법적인 권력(칼)을 통하여 선이 포상을 받으며, 악이 징벌을 받게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3-4). 그것은 현대적으로 말하면, 입법권과 경찰권과 사법권의 행사에 해당하는 것이며, 사회적으로 선과 악의 분별을 통한 통치권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통치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에서 권세자들에 대한 복종은 우리 기독인들이 양심으로 행할 것과, 6절에서 각종세금납부에 관한 것을 말하고 있으며, 7절에서는 국가의 다양한 대표자들에 대해, 기독인들은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는 질서의 중요성을 일러줍니다(벧전2:17). 그러나 바울은 이 본문에서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국가의 통치 권력이 악을 저지르며, 총체적인 불의를 행하는 국가로 전락될 경우에 그 통치자에 대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자세히 말해주지는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깊은 신학적인 행동철학의 통찰이 요구된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교훈하시는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더 깊은 이해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은 천국(하나님의 나라)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병행했던 일이 바로 병자치유와 특히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지상사역의 전체를 종합하면, 귀신(악령)을 내쫓는 모습으로 요약됩니다(막9:14-29,마8:28-34,마12:22-30). 여기에 귀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부정한 악한 영(사탄)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러한 귀신축출사역은 역시 복음전파의 맥락과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즉 귀신축출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곳에서 하나님의 영, 즉 예수의 영이 임하는 자리를 내어 주고, 악한 영들이 쫓겨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것은 또한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영역이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국 기독교(교회)의 복음전파는 이 땅에 그리스도의 통치영역의 확장이며, 동시에 세상의 악한 영들과 대립하여 싸워야 하는 영적전쟁을 뜻합니다. 악한 영을 쫓아내고, 그리스도의 영이 다스리는 환경으로 바꾸는 일이 기독교복음전파의 사명입니다. 그 때문에 사도바울은 벌써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전심갑주를 입으라고 권고하였으며, 우리의 씨름(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한 것”(엡6:10-13)임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는 예수의 영(성령)에 붙들린 택함 받은 성도들을 모으는 곳일 뿐 아니라, 이 땅에 정의롭고, 공정하며, 평화로운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하도록 복음의 영향력을 사회적으로 미칠 하나님의 일꾼을 양육하며, 훈련하는 영적전쟁준비의 장소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세상정치를 예의주시하며, 특히 그곳에서 악한 영들이 좌지우지하는 환경이 되지 않도록 항상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나라가 확장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복음의 사회적인 책임(빛과 소금의 역할) 때문에 유럽에서는 세속정부에 기독교정당이 생겨나기도 합니다(유럽에서 독일은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생각하면 세상의 통치자, 또는 권력자가 기독인이라면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하나님 앞에서 더 분명하게 인식하고 사명을 책임 있게 수행할 것입니다(미국의 트럼프대통령처럼). 그러나 비기독인의 통치자라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오늘날 민주화가 이루어진 국가에서는 국민을 위하고, 인권존중과 사회적 약자보호와 사회복지실현을 통한 경제평등과 평화지향의 환경조성에 정치적인 책임을 다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불신자 통치자를 통하여서도 하나님나라와 복음의 가치실현이 땅에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짐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자의 나라사랑은 그런 점에서도 선한 정치가 펼쳐지기를 위하여 대통령과 위정자들을 위해서 주일 공 예배에서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각 지역의 교회들은 국회의원과 각 지역의 시장, 구청장, 경찰과 각 주민 센터의 장과 직원, 통반장들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기도해주는 나라사랑이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자의 나라사랑의 중요한 방법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통치자들의 모습이 그 반대일 경우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통하여 불의한 일과 부당한 정치행위에 대하여 선지자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청와대 앞과 광화문에서 대통령하야운동을 벌써 6개월째 지속하고 있는 광훈목사의 나라사랑 행위를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여전히 질문입니다. 물론 그분의 행동에 대한 한국교회의 찬반견해가 있는 줄 압니다. 지난 8월경 한 통계는 전광훈목사의 행동에 대한 여론이 반대가 86%, 지지가 14%로 보도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11월의 여론은 오히려 정 반대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지지자의 상승으로).
다만 본 강연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전광훈목사가 내건 시국선언과 투쟁에는 중요한 명분이 포함되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이 부정되고, “자유민주주의”적인 정치체제가 무너지게 되는 국가적인 위기에 관한 그의 통찰입니다. 아마도 전목사는 이러한 중요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관한 가치가 대통령과 집권여당에게서 잘 계승되기보다는 허물어지는 위기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 특히 대통령의 그간의 친북성향의 언행에서 의심과 불신을 가진 것이 분명합니다(전목사가 제기한 7가지 대통령정책비판참고). 물론 전광훈목사의 지나친 기우이거나 오해일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문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북미회담의 중재자역할에서 보여준 그간의 지나친 친북적인 언행들이 단초가 되었으며(평창동계올림픽 연설에서 6.6현충일 연설에서 김운봉(신영복)을 거론한 일), 더욱이 현 정권의 배후세력으로 회자된 소위 정치권에 등장한 주사파인물들의 활약과 관련하여 결코 단순한 루머로만 넘길 수 없는 근거들이 드러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목회자들의 나라사랑은 현 정치시국을 예의주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특별히 문대통령의 정치사상이 자유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정통성을 얼마나 충실히 계승하고 있는지가 질문되며, 무엇보다도 이승만정부와 박정희정부로 이어진 자유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치체제를 의도적으로 부정하며, 오히려 대한민국건국의 역사를 1919년 3.1운동과 1919년 4월11일 상해임시정부수립으로 보려는 대통령의 주장에서 불신이 증대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수년간 전교조들에 의하여 한국역사가 왜곡되어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교육된 좌편향(친북)적인 교육행위들은 결코 한국교회가 외면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 대통령이 종교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북한을 너무 쉽게 판단하여, “우리민족끼리”라는 단순한 민족감정을 앞세워 그토록 회자되고 있는 연방제통일을 정치적으로 고집한다면,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분명히 이의를 제기하고, 전광훈목사와의 반정부투쟁에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우리사회의 젊은이들을 충동하던 촛불시위논리와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이란 정치논리만으로는 엄청난 종교박해의 역사를 경험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2. 세상나라의 정치와 권력은 언제나 하나님나라와 복음의 관점에서 주목하고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목회자들은 세상나라의 일들, 특히 정치와 권력사용과 관련하여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며 행동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의 대답은 역시 “하나님나라와 복음의 관점에서 세상나라를 직시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각을 보여주는 성경말씀은 바로 로마서13:1-7절 사이에서 발견합니다. 1절에서 바울은 “각 사람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일러줍니다. 그 이유는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으며,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말씀합니다. 즉 세상정부와 정치와 권력(칼)은 그들 독자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며,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 때문에 오늘날 세상나라의 최고 권력자이며, 통치자인 대통령이 국민의 손에 의하여 뽑아 세워지는 민주적인 과정을 거치게 되지만, 역시 권력자는 하나님이 세우셨음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과 경륜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불신앙 자가 통치자가 된다 할지라도, 그를 통하여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사도바울은 세상정부의 정치권력은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며, 그것은 근본적으로 천지만물의 주권자이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하신 것이며, 또한 하나님은 이와 같이 세상정부를 통하여 인간사회의 질서가 지탱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1-2), 그리고 국가의 사법적인 권력(칼)을 통하여 선이 포상을 받으며, 악이 징벌을 받게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3-4). 그것은 현대적으로 말하면, 입법권과 경찰권과 사법권의 행사에 해당하는 것이며, 사회적으로 선과 악의 분별을 통한 통치권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통치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에서 권세자들에 대한 복종은 우리 기독인들이 양심으로 행할 것과, 6절에서 각종세금납부에 관한 것을 말하고 있으며, 7절에서는 국가의 다양한 대표자들에 대해, 기독인들은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는 질서의 중요성을 일러줍니다(벧전2:17). 그러나 바울은 이 본문에서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국가의 통치 권력이 악을 저지르며, 총체적인 불의를 행하는 국가로 전락될 경우에 그 통치자에 대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자세히 말해주지는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깊은 신학적인 행동철학의 통찰이 요구된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교훈하시는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더 깊은 이해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은 천국(하나님의 나라)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병행했던 일이 바로 병자치유와 특히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지상사역의 전체를 종합하면, 귀신(악령)을 내쫓는 모습으로 요약됩니다(막9:14-29,마8:28-34,마12:22-30). 여기에 귀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부정한 악한 영(사탄)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러한 귀신축출사역은 역시 복음전파의 맥락과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즉 귀신축출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곳에서 하나님의 영, 즉 예수의 영이 임하는 자리를 내어 주고, 악한 영들이 쫓겨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것은 또한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영역이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국 기독교(교회)의 복음전파는 이 땅에 그리스도의 통치영역의 확장이며, 동시에 세상의 악한 영들과 대립하여 싸워야 하는 영적전쟁을 뜻합니다. 악한 영을 쫓아내고, 그리스도의 영이 다스리는 환경으로 바꾸는 일이 기독교복음전파의 사명입니다. 그 때문에 사도바울은 벌써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전심갑주를 입으라고 권고하였으며, 우리의 씨름(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한 것”(엡6:10-13)임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는 예수의 영(성령)에 붙들린 택함 받은 성도들을 모으는 곳일 뿐 아니라, 이 땅에 정의롭고, 공정하며, 평화로운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하도록 복음의 영향력을 사회적으로 미칠 하나님의 일꾼을 양육하며, 훈련하는 영적전쟁준비의 장소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세상정치를 예의주시하며, 특히 그곳에서 악한 영들이 좌지우지하는 환경이 되지 않도록 항상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나라가 확장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복음의 사회적인 책임(빛과 소금의 역할) 때문에 유럽에서는 세속정부에 기독교정당이 생겨나기도 합니다(유럽에서 독일은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생각하면 세상의 통치자, 또는 권력자가 기독인이라면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하나님 앞에서 더 분명하게 인식하고 사명을 책임 있게 수행할 것입니다(미국의 트럼프대통령처럼). 그러나 비기독인의 통치자라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오늘날 민주화가 이루어진 국가에서는 국민을 위하고, 인권존중과 사회적 약자보호와 사회복지실현을 통한 경제평등과 평화지향의 환경조성에 정치적인 책임을 다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불신자 통치자를 통하여서도 하나님나라와 복음의 가치실현이 땅에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짐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자의 나라사랑은 그런 점에서도 선한 정치가 펼쳐지기를 위하여 대통령과 위정자들을 위해서 주일 공 예배에서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각 지역의 교회들은 국회의원과 각 지역의 시장, 구청장, 경찰과 각 주민 센터의 장과 직원, 통반장들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기도해주는 나라사랑이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자의 나라사랑의 중요한 방법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통치자들의 모습이 그 반대일 경우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통하여 불의한 일과 부당한 정치행위에 대하여 선지자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청와대 앞과 광화문에서 대통령하야운동을 벌써 6개월째 지속하고 있는 광훈목사의 나라사랑 행위를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여전히 질문입니다. 물론 그분의 행동에 대한 한국교회의 찬반견해가 있는 줄 압니다. 지난 8월경 한 통계는 전광훈목사의 행동에 대한 여론이 반대가 86%, 지지가 14%로 보도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11월의 여론은 오히려 정 반대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지지자의 상승으로).
다만 본 강연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전광훈목사가 내건 시국선언과 투쟁에는 중요한 명분이 포함되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이 부정되고, “자유민주주의”적인 정치체제가 무너지게 되는 국가적인 위기에 관한 그의 통찰입니다. 아마도 전목사는 이러한 중요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관한 가치가 대통령과 집권여당에게서 잘 계승되기보다는 허물어지는 위기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 특히 대통령의 그간의 친북성향의 언행에서 의심과 불신을 가진 것이 분명합니다(전목사가 제기한 7가지 대통령정책비판참고). 물론 전광훈목사의 지나친 기우이거나 오해일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문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북미회담의 중재자역할에서 보여준 그간의 지나친 친북적인 언행들이 단초가 되었으며(평창동계올림픽 연설에서 6.6현충일 연설에서 김운봉(신영복)을 거론한 일), 더욱이 현 정권의 배후세력으로 회자된 소위 정치권에 등장한 주사파인물들의 활약과 관련하여 결코 단순한 루머로만 넘길 수 없는 근거들이 드러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목회자들의 나라사랑은 현 정치시국을 예의주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특별히 문대통령의 정치사상이 자유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정통성을 얼마나 충실히 계승하고 있는지가 질문되며, 무엇보다도 이승만정부와 박정희정부로 이어진 자유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치체제를 의도적으로 부정하며, 오히려 대한민국건국의 역사를 1919년 3.1운동과 1919년 4월11일 상해임시정부수립으로 보려는 대통령의 주장에서 불신이 증대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수년간 전교조들에 의하여 한국역사가 왜곡되어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교육된 좌편향(친북)적인 교육행위들은 결코 한국교회가 외면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 대통령이 종교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북한을 너무 쉽게 판단하여, “우리민족끼리”라는 단순한 민족감정을 앞세워 그토록 회자되고 있는 연방제통일을 정치적으로 고집한다면,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분명히 이의를 제기하고, 전광훈목사와의 반정부투쟁에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우리사회의 젊은이들을 충동하던 촛불시위논리와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이란 정치논리만으로는 엄청난 종교박해의 역사를 경험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 교회연합신문 & www.ecumenicalpres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