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祈福)은 문자 그대로 복을 비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종교가 있는 곳에는 기복행위가 있다. ‘비손’이나 ‘굿’이나 ‘예불’이나 ‘제사’ 등 모든 종교행위에 기복이 있다. 그것이 소시민들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복’과 ‘종교’는 분명하게 서로 구분되는 현상이다. 더우기 ‘기복’과 ‘복음’은 전혀 다르다.
마태복음 5장에서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심령이 부한 자, 애통함이 없는 자,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자, 세상에서 돈과 명예가 있어 내노라 하고 사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기독교보다 앞서 한국에 전래된 대표적 고전종교들 마저 모두 기복주의에 의해 그 생명력을 잃고 허명(虛名)만 남아 미신화 되어 가고 있다. 민족 구원의 방주를 자처하는 기독교 조차 그래서는 안된다. 기독교의 복음은 ‘꿩 잡는 것이 매’가 되어서는 안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하는 것은 기독교의 복음이 아니다. 썩어져 가는 구습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성도(聖徒)라고 한다. 성도는 육신의 욕망과 소욕대로 살고자 하는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복음으로 거듭나 성도가 되었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 믿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빽을 빌려 잘 먹고 잘 살려는 세속적 욕심이 생긴다면 이런 신앙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한국기독교는 결국 민족복음화란 미명하에 새로운 기복집단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심히 우려되는 일이다.
세속적 현세적 욕망을 위한 기복주의는 끝없이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 기복주의는 사람을 계속 좇기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한국기독교가 분열과 경쟁의 시대를 거치면서 교회의 목회자들도 성공주의에 빠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인들의 욕망에 영합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그들의 현세적 욕망의 충족을 위한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름아래 생각없이 전하고 있지는 않는지… 기독교의 복음은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만사형통하고, 잘 먹고 잘 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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