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다. 1-2차 세계대전을 포함해서 전쟁은 평화를 위협하고 인간의 가장 비참한 상황을 영출해 오고 있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은 세계는 UN을 탄생시켜서 국가 간의 갈등을 조절하고 상호 의견들을 조정하며 전쟁을 방지 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전쟁은 국가 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의 갈등으로 내전도 쉬지 않고 있다.
한반도의 민족세계전쟁(6.25 민족상잔)은 또 하나의 세계전쟁이었다.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심을 철저히 파괴하며 인간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린다. 톨스토이는 그의 저서 ‘전쟁과 평화’에서 전쟁의 참상을 실감 있게 그리고 있다. 전후 처리 문제로 분단된 한반도는 70여 년을 지나는 동안 끊임없는 전쟁의 위험에 직면해 왔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혁명을 바탕으로 들어서서 임기 후반까지 남북정상이 만나고 북미정상이 만나는 연출을 했지만 남북의 진정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요원하다. 비핵화 문제를 두고 미국의 강도 높은 북에 대한 제재와 생존을 몸부림하는 북의 대처로 인하여 접점을 찾아 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전쟁과 폭력의 유사점은 강자에 의해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전쟁 이데올로기의 생산은 대개의 경위 힘겨루기와 소유의 탐욕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의 마지막 싸움은 종교적인 교리에 근거한다.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 유대교는 그 역사적 뿌리가 하나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싸움은 그칠 날이 없다. 개인과 개인, 조직과 공동체,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생존과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갈등과 위기, 기장은 그칠 날이 없다.
죽고 죽이는 싸움과 전쟁은 불가피하다? 중동 지역의 기름 수입을 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호르무즈 해협을 함께 지켜야 한다는 현실적인 상황과 함께 미국의 파병 압박에 직면하여 고민이 커진다. 그러나 고민할 것 없다. 전쟁에 합류하는 파병은 있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이란 사령관의 제거는 이란과 미국의 문제일 뿐이다. 정상적인 한 나라의 국방 사령관을 제거하였다면 누구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국가의 자존심도 그렇고 자존감도 그렇다. 만일 한국이 호르무즈 파병을 한다면 이란과 원수 관계가 되면 안 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과 이란과의 일일 뿐이다. 종교와 역사, 문화가 다르다고 해서 무자비하게 죽이는 살인적 행위를 한다면 전쟁을 막을 길은 없다.
전쟁은 이긴 자도 없고 진자도 없다. 다시 말하면 모두가 비참한 상황만 남는다. 예수가 말하는 성서에서의 선언은 평화와 화해, 용서와 사랑이다. 끝없는 욕망과 소유의 악마에 붙잡혀 있는 인간들의 영혼은 악마적인 것을 탈출해야 하고 해방되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을 약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개입해서는 안 될 전쟁에 들어간다면 어리석을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비참하게 할 것이다.
이란은 미국과의 핵 협정을 사실상 포기하였고 우라늄 생산에 돌입할 것을 천명하였다. 중동이 전쟁의 분위기로 세계 경제마저 어두운 전망을 내 놓고 있다. 이제는 세계 어느 곳에서 전쟁이 나면 무기상들은 돈을 벌지 모르지만 전쟁을 하는 나라, 특히 약소국은 파괴되며 이긴 자라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숨져간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이라는 점이 부담스럽고 압력을 받는다. 어떤 식이든 미국이 전쟁하게 되면 참여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이다.
특히 석유 교통지역인 호르무즈에 군사적인 협력 파병으로부터 여기에 준하는 어떤 식의 참여를 압박받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동맹이라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전쟁에 참여 하면 이란과 적이 될 수도 있다.
이제 인류는 이제라도 진정한 평화의 길을 시작해야 한다. 팍스 아메리카의 평화나 자국의 이익을 내 세워 타자의 생명을 죽이는 전쟁은 모두의 파멸을 자초할 뿐이다. 어떤 경우에도 갈등을 평화적 방법으로 풀고 화해와 상호의 입장을 이해하는 진정한 평화를 만들어 가는 출발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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