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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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에 떠도는 민담에 이런 것이 있다. 어느 젊은이가 극진히 사랑하는 아가씨가 있어 아내로 맞게끔 허락해 줄 것을 부친에게 간청을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 아가씨만은 안 된다. 고 완강히 거부를 한다. “실은 너희 어머니에게는 속여 왔지만 그 아가씨는 딴 데서 낳아온 아이다”고 했다.
그래도 이 아들은 체념하지 않고 이번에는 어머니한테 가서 상의를 했다. 어머니의 대꾸인즉.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라. 실은 너희 아버지에게는 속여 왔지만 너는 아버지 자식이 아니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시실을 말하고 있지만 부모들의 결합은 거짓 위 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건 심한 경우이지만 남녀 사랑이란 시간의 구분 없이 어느 만큼은 거짓으로 속이고 속는 사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나이가 마음먹은 여인을 낚아채고 싶을 때 그 낚시 밥은 화려한 거짓말이 서려있다. 여인도 그렇다 화려한 화장 자체가 속임수다. (햄릿에서 주인공은 백분 칠을 한 오피리아를 이렇게 질책하고 있다.
“신이 만들어 준 얼굴을 너희 여자들은 화장으로 속여 딴 얼굴로 만들고 있다”고 어디 화장 뿐 인가? 진짜와 가짜의 식별이 어려울 정도로 정교 하게 가짜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사람마저도 가짜로 만들어 내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한 때 명품과 똑같이 만들어 은밀히 유통되던 일명 짝퉁 명품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의 명품 가방을 전문가조차 식별이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가짜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교회 목회자중 가짜 가운을 걸친 목회자 들이 많다는 데에는 할 말을 잃게 된다. 혹은 많이 세상 잘 돌아 가는데 무엇 그렇게 과잉 반응이냐고도 혹은 말한다. 거짓말은 윤활유 같은 것. 물론 거짓말에는 그 성질이 악질이냐? 양질이냐? 에 따라 빛깔이 다를 수 있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 순례 길에 거짓말한 사람의 심판 장면이 나오는데 하얀 거짓말을 한 사람은 구제를 받고 검은 거짓말을 한 사람은 단죄를 받게 된다.
하얀 거짓말은 다치는 사람이 없는 거짓말이고 검은 거짓말은 그 때문에 해를 받은 사람이 있는 악의 거짓말이다.
요즘 사이비 종교가 어떻게 그렇게 순진한 성도들을 유인 할 수 있었을까? 사이비종교는 겉으로는 종교처럼 보이나 실제는 종교가 아니다. 사이비 종교는 ‘진짜 종교와 구별되는 ’가짜 종교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이비 종교 중에는 사교(邪敎)가 있다 이것은 사악한 종교라는 뜻이다. 사교에서는 대개 응집력이 있고 폭력, 비 윤리적 행동, 가정파괴, 집단적 공동생활 방식의 방식을 갖고 있기도 하나 반사회적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교는 자기들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갖고 있기도 하며 “천국의 문처럼 다른 집단에게 기이하고 해괴한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신약 외경 유딧 9:3 속임수가 있는 곳에 피가 함께 한다는 말이 나온다. 외경에 나온 말이라고 무심히 지나쳤던 말이다.
피를 흘린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 삶이 진실을 외면하고 살다가 최후에 당할 일을 깨우쳐 주는 구절이다. 우리는 눈 한번 찔끔 감으면 세상의 모든 것을 속일 수 있고 속이며 살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에 합당한 피의 보상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속임수는 어떠한 경우에서나 좋은 전술은 아니다. 속임수는 언제 인가는 그 진상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순진한 기성 성도들을 온갖 속임수로 유인하여 자기 아성을 꾸리 o wl wk 던 교주의 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한국 교회여 진리 앞에 진솔하자. 거짓의 덫에 걸리지 않게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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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덧에 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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