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Eva Prima Pandora” 혹은 “에바 프리마 판도라”를 입력하면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아름다운 여체를 만날 수 있을 것이고, 파리 루브르미술관이라면 리슐리외 관 2층에서 세로 97㎝ 가로 150㎝의 원화를 직접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풍만한 여인의 육체와 다소 굳어 보이는 그래서 그리스풍의 얼굴로 받아들일 수 있을 여인의 얼굴에서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그러면 그림 위쪽 한 가운데 위치한 명판을 보시라. “Eva, Prima, Pandora” 우리말이라면 “원래는 판도라였던 에바”가 될 것인즉, 화면 가득히 나신으로 누워있는 이 미녀는 “에바”이기도 하고 “판도라”이기도 하다는 풀이인 것 같다.
음부만 살짝 흰 천으로 가린 채, 오른 팔로 비스듬히 상반신을 일으키고 있는 미녀 주변에는, 적잖은 소도구들(어트리뷰트)이 널려있다. 그들이 지닌 메시지는 우리의 상식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해골위에 놓인 오른 손이 잡고 있는 나무 가지에는 작은 열매들이 달려있다. 에덴에서 에바가 따먹었다는 금단의 열매임에 틀림없을 터. 항아리 위에 놓인 왼팔에는 팔찌 인양 뱀을 두르고 있으니, 에바를 꼬드긴 뱀이 아니던가. 또 그녀의 왼손이 만지고 있는 아름다운 항아리는 “판도라의 항아리”일 것이고. 그리스신화에서는 일찍 부터 여신이 있었다. 아프로디테가 그렇고 아테나도 그렇다. 그런데 인간세계에서는 남자는 있었으나 여자는 없었다. 어느 날 전능의 신 제우스가 최초의 여성을 만들라고 신들에게 요청한다.
올림포스 산에서 대장장이 우르카누스가 흙으로 여자를 빚어내자 제우스가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는다. 이어서 비너스가 아름다움을, 디아나는 달의 비밀을, 미네르바는 실을 잣는 기술을, 아폴론은 아름다운 목소리를....이렇게 해서 인류 최초의 여성 판도라가 탄생한 것이다.
“판도라(pandora)”는 “모든 신들(pantes)”로 부터 “여러 가지 선물(dora)”을 받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모든 것을 받은 자”란 뜻이란다. 얼른 보기에 완벽한 존재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했다. 마지막으로 선물을 보낸 헤르메스는 여행과 상업의 신이었기에 도둑질과 거짓말도 수호하는 신이었다. 판도라는 그런 것들도 선물로 받은 것이다. 겉모양은 아름답지만 속내는 거짓말과 도둑질로 채워진 것이다.
제우스는 판도라를 프로메테우스의 아우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낸다. 메테우스(metheus)는 “생각하는 자”이고 프로(pro)는 “앞“을, 에피(epi)는 ”뒤“를 가리키는 말. 앞을 내다본 프로메테우스는 아우에게 선물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리지만, 판도라의 아름다움에 혹한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를 아내로 맞는다.
집에는 봉해진 항아리가 있었다. 호기심 많은 판도라,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머지 몰래 뚜껑을 연다. 속에서 여러 가지 액화(厄禍)들이 뿜어져 나온다. 그렇게 해서 여자가 생겨나기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불행이 세상에 넘쳐나게 된다. 급하게 뚜껑을 닫아서 항아리에 가둔 것은 희망이라고들 말하고 있지만.
에덴에서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에바가 선악과를 따먹는다. 그로써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잃고 에덴에서 쫓겨난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노동을 해야 하고...그렇게 세상에 불행을 가져온 여인은 아이를 낳기 위해 진통을 겪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최초의 여인 때문이 아니던가.
에덴에서는 에바가 올림포스에서는 판도라가, 호기심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신의 뜻을 어긴다. 그래서 인류에게 많은 어려움을 가져다준 원흉이 된다. 그러나 판도라는 판도라의 항아리를 열어서 불행을 가져다주긴 했지만, 다른 신들에게서 받은 지혜와 능력으로 인류의 문명을 이끌었다. 마찬가지로 에바는 뱀에게 속아 금단의 열매를 따먹어 에덴에서 쫓겨나지만, 인류의 문명은 에덴동산 밖에서 이루어진 것을. 인류의 문명은 두 여성으로 해서 오늘을 보게 된 것이다. 얼핏 여성을 폄하하는 신화 같지만 뒤집어 놓고 보면 여성의 생산성이 문명의 원천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으리라.
그림으로 돌아가자. 원근법으로 그린 배경을 가로 지르는 굵은 나무. 그 오른 편은 거친 자연으로 채워지고 왼편은 문명을 상징하는 도시가 배치되어있다. 이교도의 세계와 그리스도교 문화권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지 않는가. 불가사의한 것은 그림 한 가운데 덩그러니 서있는 빨간색의 큰 항아리(물병?). 이게 뭘까? 혹 그녀가 뚜껑을 덮고 있는 불행의 항아리에 대처하는 행운의 항아리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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