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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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온통 대 혼란에 빠져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이런 때 기도를 하지 않을 성도는 없을 터인데 왜 하나님은 기도 응답을 지연 시키시는가? 오늘 본문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안타깝게도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1초를 다투어 가면서 주님을 기다렸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저들의 화급한 마음과는 반대로 그 소식을 듣고도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병이라고 말씀 하시며 천연덕스럽게 이틀이나 더 머물러 계셨다.
결론적인 말씀을 드린다면 심부름꾼이 예수님께 전갈을 가지고 왔을 때 이미 나라로는 죽어 있었다. 그리고 슬픔을 당한 자매들은 예수님을 기다리며 장례식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들의 모든 기대는 사라졌고 희망도 앗아가고 말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틀이나 더 머물러 계셨다. 왜 예수님은 왜 이리도 머뭇거리고 계셨을까? 여기 두 자매뿐이겠는가?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안타깝게 호소해왔던가? 그리하여 기도를 포기해 왔던가?
랍비 헤럴드 쿠시너는 왜 선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 앞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는 우리의 기대를 꺾어버 리는 것이라고 주장 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전지전능함 사이에서 갈등하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은 받아들이되 그 분으전지 전능한 기대는 내려놓아야하고 접어 버리라고까지 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 분이 그렇게 하실 수 없는 많은 여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베풀고 싶어 하시지만 항상 그렇게 하실 수는 없다. 쉬운 예를 들면 경기장에서 양편이 똑같이 자기편이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은 어느편을 들어 주실까 하나님도 답답해하실 것이다.
기도를 지연 시키는 첫째 이유는 첫째 주님의 마뭇거리심은 바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겸손이다. 주님은 자기 뜻대로 모든 일을 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말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다. 그것이 두 자매에게는 주님의 이해 못 할 지체하심으로 보였을 것이다.
둘째로 우리 예수님의 지체하심 그것은 사랑하는 성도에게 인내를 가르치시는 방법이다. 하나님은 필요 할 때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받아 누리게 하시는 아버지만은 아니시다. 때로는 하나님은 성도에게 인내를 가르친다.
하나님은 참을 줄 모르는 망나니를 원치 않으신다. 오래 오래 기다 릴 줄 아는 인내의 자녀를 원하신다. 인내 할 줄 아는 자녀 그 성숙한 자녀만이 천국을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내를 가르치셨다. “비록 더딜 지라도 기다리라 지체 되지 않고 정연 응하리라. (합2:3)
셋째로 예수님의 지체하심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이시다. 그로인해 가족들의 슬픔은 더했지만 결과 적으로 더 좋은 것을 허락 하셨다. 넷째는 주님의 지연시키심은 그들의 모든 인간적인 기대를 포기하기를 기다리는 주님의 훈련 이시다.
인간적인 모든 기대가 철저하게 포기 되지 않으면 주님의 역사는 없으시다. 물에 빠진 사람은 살겠다는 허우적거림이 없어 질 때 그 때가 살려낼 때이다. 우리의 기대가 철저히 포기 되는 순간이 하나님이 역사하는 순간이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 보자. 인간의 모든 수단을 강구해 보지만 그것으로 다 가 아님을 시인 하자.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역사의 시작이다” 이 땅의 성도가 고통당한다고 해도 그 일 때문에 이루시는 그 가장 좋은 응답을 감격적으로 믿음으로 체험하는 성도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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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응답이 왜 지연되나?요11:5-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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