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1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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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 바흐의 전기로 분류될 수 있을 서적들을 읽으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감흥을 경험한 적이 있다. 관리를 위해서 12부분으로 나누어진 유산목록의 마지막 부분이 종교서적 묶음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이 유난스러워서였다.
1750년 11월에 유족들에게 분배된 유산내역을 보면, 부인 막달레나가 3분의 1을 차지하고 나머지를 아홉 자녀가 나누어 가진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유족들이 악보와 서적과 그림은 서로 가지겠다고 한바탕 다툼을 벌인 후의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종교서적만은 다툼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는가 말이다. 오늘날 나름대로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대상이 당시 유족들에게는 전혀 인기가 없었다니. 왜 그러지 않았겠는가. 더군다나 바흐가 남긴 81권의 종교서적 대부분이 루터주의 정통파 신학자들의 저작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바흐의 <마태수난곡>과 연관해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81권의 종교서적들 중의 하나인 <칼로프 성서>로 일컬어지고 있는 “성서주석서”이다. 루터의 번역본에 17세기 비텐베르크의 정통파 신학자 아브라함 칼로프 (Abraham Calov)가 주석을 더한 책이란다. 3권으로 된 그 책들에는 “J. S. 바흐, 1733”이라는 서명이 뚜렷하고, 연구가들이 바흐의 자필로 인정한 메모들과 아랫줄이 남아있다고 한다.  
우리에게 바흐가 남긴 <칼로프 성서>를 직접 살펴 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래서 <마태복음> 26장 74절을 펼친다면, 다음과 같은 메모를 볼 수 있을 것이란다. “닭이 우는 소리… 하찮은 짐승의 소리… 그게 하나님과 연결된다.” 그 메모만으로도 <마태수난곡>의 상당부분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는가.
<마태복음서> 26,27장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은 그리스도를 수난으로 몰아세운 이들이 테마가 되어 있지만, “베드로의 부인”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약함과 어리석음이 아픔으로 그려진다. 아리아 <불쌍히 여기소서>를 들으면서 우리는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도 그 소용돌이가 치유를 느끼고 해방을 맛보게 해준다. 소용돌이는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용서가 만나고 어울리는 시공간이다. 바흐가 그리는 자상한 인간의 죄는 그렇게 그려짐으로 해서 이미 치유가 시작 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쯤해서 바흐가 남긴 <칼로프 성서>에서 <요한복음 19장>을 뒤져보기로  하자. 거기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은 성서의 성취이고 인류 대속의 완성이다.”라는 루터의 어록에 바흐가 친 밑줄을 볼 수 있을 것이란다. 그게 바로 바흐가 남긴 또 하나의 수난곡 <요한수난곡>의 중심 테마가 아니던가.  
바흐는 두 복음서의 성격을 잘 파악해서 <요한수난곡>에서는 코랄을 중심으로 공동체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다소 당당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에 비해 <마태수난곡>에서는 아리아를 많이 삽입해서 인간적이고 정서적인 면을 드러내 보인다. 그래서일까 일반적으로 <요한수난곡>보다는 <마태수난곡>을 더 많이 연주하고 감상하고 있는 것 같다.   
제 47곡의 알토 아리아 <베드로의 뉘우침>은 듣고 또 들어도 새롭다. <마태복음> 26장 75절  “그러자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하신 예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바깥으로 나가서 몹시 울었다. “를 음악적으로 재생한 부분이 그렇다. 노랫말은 이렇게 되어 있다.”아 나의 하나님, 나의 눈물을 보시어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나의 눈물을 보소서. 애통하는 나의 가슴과 눈길은 주님을 향하고 있나이다. “
"몹시 울었다. “라는 마태복음의 기사를 바흐는 이렇게 그린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연주를 듣노라면 바흐가 그리는 베드로의 울음은 애처롭다거나 안타까움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죽어버리겠소. 하는 식의 막무가내 통사정도 아니다. 칙칙하지도 않다. 맑고 깨끗하다.
“47곡” 알토의 아리아가 조용히 끝이 나면 “48곡” 코랄이 응답한다. 그 코랄의 마지막 가사는 이렇게 맺어진다. “사랑은 내 속에 있는 죄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바흐에게 있어 구원이란 하나의 소원과 소망으로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기도와 더불어 현실화된 용서로 완성된다.   
칼 리히터의 1980년도 녹음판을 듣는다. 바이올린 오브리가트와 더불어 단아하면서도 따뜻하게 와 닿는 자넷 베이커의 알토는 약 7분 남짓 심금을 적신다. 노랫말이 노래가 되면서 끈적이는 점액질이 말끔히 가신다. “불쌍히 여기소서.”는 비굴하게 꼬이지 않는 저림이 되어 죄와 치유가 하나 됨을  느끼게 한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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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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