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Aya Sofya) 박물관은 본명이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 대성당이다. 그리스어로 하기아는 성서럽다는 말이고, 소피아는 지혜라는 말이다. 성서러운 지혜라는 뜻이다. 성서로운 지혜는 곧 그리스도를 말한다. 주후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낙성된 비쟌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 오스만 투르크에 점령된 후 아랍어로 바뀐 이름이 아야소피아이다. 오늘날 비쟌틴 건축의 걸작으로 찬사를 받는 아야소피아는 360년 콘스탄티누스 2세 황제 때 세워졌으나 이후 화제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이것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인 532년부터 537년까지 5년간에 걸친 개축공사로 현재의 대성당이 되었다.

 

건축 자재는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신전과 레바논의 아폴론 신전에서 운반해 온 기둥과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석재들을 이용해 건축되었다. 거대한 중앙 돔은 직경이 31m, 높이가 54m에 달한다. 비쟌틴제국은 이곳에서 황제즉위식이나 전승기념식 등을 가졌다. 그리고 1천년동안 하나의 교회로 전래해온 그리스도의 교회가 1054년 동방 정교회(Eastern Orthodoxy)와 로마 가톨릭(Roman Catholic)으로 갈라선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은 소위 필리오케’(Filioque) 논쟁이라는 성령발출설에서 비롯되었다. 성령발출설이란 동방교회는 성령이 성부에게서나온다는 것이고, 서방교회는 성부와 성자에게서나온다는 주장이었다.

 

오스만 투르크와 수년간 대치해 오던 콘스탄티노플은 함락 전야에 황제와 총주교 등 국가의 주요인사들이 모여 소피아 대성당에서 성만찬을 가졌다. 그리고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그 다음날 3중 성곽을 헐고 밀려들어온 투르크 군에 맞서 싸우다 전쟁터에서 죽었다. 1453530일의 일이다. 투르크의 젊은 통치자 슐탄 메흐멧 2세는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여 소피아 대성당에서 알라에게 감사예배를 드렸다. 또 성당 건물 주위에 이슬람 사원을 상징하는 미나렛(첨탑)을 세우고, 내부의 기독교 모자이크화는 회벽과 코란 문자로 덮어 모스크로 사용했다. 그러다 세계 1차대전 이후 터키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타 투르크의 세속주의 선언에 따라 1935년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아야소피아 박물관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독교 정통신앙의 수호자인 동방 정통교회의 총대주교좌는 이렇게 하여 이슬람에 빼앗겨 전세계 모슬렘의 머리가 되어갔다. 그리고 동방 정교회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 깃발은 갈 곳을 찾지 못해 끝내 러시아 정교회로 옮겨갔다. 아야소피아 박물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터키의 가장 중요한 관광지 중 하나이다. 그래서 성지순례객 뿐만 아니라 터키를 찾는 모든 여행객은 누구나 한번쯤은 이 곳을 찾는다. 또한 이곳에선 어떠한 종교행위도 금지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이 소피아 대성당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다시 이슬람 사원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하고, 지난 724일 금요일부터 이슬람예배를 강행해 세계인을 놀라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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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기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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