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젊은 시절에 중국 무협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 저의 영적 전쟁으로 오버랩을 시키며 기도해봤습니다
. “주여
, 저의 영혼이 저렇게 민첩하고 용기 있게 하시고 잠을 자면서도 사탄과 싸우게 하옵소서
.” 그러나 요즘은 그런 무협 영화를 보지 않습니다
. 영춘권
, 태극권의 고수들이 격투기 선수들에게
1분도 안 되어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 대신에 이따금씩 삼국지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 삼국지에도 좀 뻥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 예컨대 조자룡이
20만의 진을 뚫었다든지
, 관우의 오관 돌파의 전설이라든지 뻥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역사 소설인 것만은 분명하거든요
. 그런데 삼국지를 보면 군사의 수나 용맹보다도 싸움의 전략과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 싸울지도 모르는 어설픈 군사들이 먼저 나가 싸우다가 전쟁을 망쳐버리는 것을 봅니다
. 마속 같은 경우는 제갈량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소신을 앞세우다가 촉나라의 군대를 무참하게 희생 시켜버리고 말았지 않습니까
? 그러나 적벽대전에서는 다르죠
. 제갈량은 바람의 방향을 이용하는 면도 있었지만
, 먼저 조조 진영의 군대를 이간질하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 조조의 군사들이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80만의 대군이 대패를 하게 만들어 버렸지요
.
요즘 반기독교 진영에서는 한국교회에 부정적 프레임을 씌워서 공격을 합니다. 어떻게든지 한국교회로부터 공격의 빌미를 잡아서 파상적인 공세를 취한 후 분열을 시키려고 합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걸려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각자의 의분을 가지고 내부총질을 하고, 기관마다 자기 소리를 내며 각개전투를 합니다. 한국교회가 원 리더십, 원 메시지를 낸 것은 오래 전의 일입니다. 각자 따로 메시지를 내고, 따로 행동을 합니다.
코로나를 대응하는데 있어서도 여러 소리가 나왔습니다. 온라인예배를 드리는 것은 정부에 굴복하는 것이라느니, 중대본의 수칙을 지키는 것도 정부에 항복하는 것이라느니, 사회적 거리두기 하는 것이 성경 몇 장 몇 절에 있느냐는 등 각자의 소리를 내며 오히려 싸움의 대상을 우군으로 정해버리는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예배를 생명처럼 여겨야 합니다
. 전염병 중에도 구약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상번제를 끊지 않고 드렸습니다
. 그러나 멀리 있는 백성들은 전염병 중에 성전으로 모이지 못할 것을 전제하고 성전을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했잖아요
.(대하
6:28-30) 그러니까 전염병 중에는 당연히 건강한 중직자들은 현장예배를 드리되
, 노약자와 고위험군은 집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 만약에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다가 조그마한 실수로 교회에서 수백 명의 확진자가 나와 버리면 반기독교 세력은 온갖 부정적 프레임을 씌워서 모든 언론과 국민 여론이 교회를 공격하도록 하지 않겠습니까
? 코로나를 거치면서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았습니까
?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싸움의 본질을 알고 싸움의 전략과 기술을 터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 반기독교 진영이 프레임을 걸어오면 우리는 그 프레임에 말려들지 말고 오히려 새로운 비전과 가치를 제시하며 새 길을 열어가야 합니다
. 교회와 예배의 본질을 붙잡되
, 꼰대가 아닌 새로운 교회 모습을 보이고 새 술을 담는 새 교회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하나로 뭉쳐 힘을 축적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략가들을 세워서 싸움의 전략과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그럴 때 한국교회는 더 견고하게 될 것이고 시대의 정신적, 영적 방역의 기능을 하고 거룩한 항체와 저항인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