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1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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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젊은 시절에 중국 무협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저의 영적 전쟁으로 오버랩을 시키며 기도해봤습니다. “주여, 저의 영혼이 저렇게 민첩하고 용기 있게 하시고 잠을 자면서도 사탄과 싸우게 하옵소서.” 그러나 요즘은 그런 무협 영화를 보지 않습니다. 영춘권, 태극권의 고수들이 격투기 선수들에게 1분도 안 되어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이따금씩 삼국지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삼국지에도 좀 뻥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조자룡이 20만의 진을 뚫었다든지, 관우의 오관 돌파의 전설이라든지 뻥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역사 소설인 것만은 분명하거든요. 그런데 삼국지를 보면 군사의 수나 용맹보다도 싸움의 전략과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싸울지도 모르는 어설픈 군사들이 먼저 나가 싸우다가 전쟁을 망쳐버리는 것을 봅니다. 마속 같은 경우는 제갈량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소신을 앞세우다가 촉나라의 군대를 무참하게 희생 시켜버리고 말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적벽대전에서는 다르죠. 제갈량은 바람의 방향을 이용하는 면도 있었지만, 먼저 조조 진영의 군대를 이간질하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조조의 군사들이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80만의 대군이 대패를 하게 만들어 버렸지요.

 

요즘 반기독교 진영에서는 한국교회에 부정적 프레임을 씌워서 공격을 합니다. 어떻게든지 한국교회로부터 공격의 빌미를 잡아서 파상적인 공세를 취한 후 분열을 시키려고 합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걸려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각자의 의분을 가지고 내부총질을 하고, 기관마다 자기 소리를 내며 각개전투를 합니다. 한국교회가 원 리더십, 원 메시지를 낸 것은 오래 전의 일입니다. 각자 따로 메시지를 내고, 따로 행동을 합니다.

 

코로나를 대응하는데 있어서도 여러 소리가 나왔습니다. 온라인예배를 드리는 것은 정부에 굴복하는 것이라느니, 중대본의 수칙을 지키는 것도 정부에 항복하는 것이라느니, 사회적 거리두기 하는 것이 성경 몇 장 몇 절에 있느냐는 등 각자의 소리를 내며 오히려 싸움의 대상을 우군으로 정해버리는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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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연히 예배를 생명처럼 여겨야 합니다. 전염병 중에도 구약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상번제를 끊지 않고 드렸습니다. 그러나 멀리 있는 백성들은 전염병 중에 성전으로 모이지 못할 것을 전제하고 성전을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했잖아요.(대하6:28-30) 그러니까 전염병 중에는 당연히 건강한 중직자들은 현장예배를 드리되, 노약자와 고위험군은 집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다가 조그마한 실수로 교회에서 수백 명의 확진자가 나와 버리면 반기독교 세력은 온갖 부정적 프레임을 씌워서 모든 언론과 국민 여론이 교회를 공격하도록 하지 않겠습니까? 코로나를 거치면서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았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싸움의 본질을 알고 싸움의 전략과 기술을 터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기독교 진영이 프레임을 걸어오면 우리는 그 프레임에 말려들지 말고 오히려 새로운 비전과 가치를 제시하며 새 길을 열어가야 합니다. 교회와 예배의 본질을 붙잡되, 꼰대가 아닌 새로운 교회 모습을 보이고 새 술을 담는 새 교회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하나로 뭉쳐 힘을 축적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략가들을 세워서 싸움의 전략과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그럴 때 한국교회는 더 견고하게 될 것이고 시대의 정신적, 영적 방역의 기능을 하고 거룩한 항체와 저항인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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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싸움의 대상을 바로 정해야 합니다. 싸움의 기술은 더 중요한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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