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쓴 ‘하얀 철쭉’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리움이 지나치면 외로움이 되는 줄을 왜 몰랐겠어요
사랑도 지나치면 상처가 된다는 걸 알았지만
한겨울에 하얗게 피어난 이유는
화사한 봄
초록의 여름이 다 지나도
당신에게 고백하지 못한
마지막 말 한 마디 남아서
이렇듯
창백한 얼굴로
하고 싶은 말도 잊은 채
하얗게 피어 있다는 걸
왜 모르겠어요
우리 교회로 오는 길에는 철쭉나무 벽이 있습니다. 철쭉꽃은 봄에 피어야 하는데 겨울인데도 핀 것입니다. 12월에도 피고 심지어는 1월에 피었다가 얼어 버린 것도 있습니다. 그렇게 핀 꽃은 하얀 철쭉이었습니다. 자기가 인동초도 아니고 에델바이스도 아니면서 겨울에 피어 시들어버린 꽃을 보며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꽃에 옷을 입혀 줄 수도 없고요. 안타까워서 그저 마음으로 축복하다가 시적화자는 하얀 철쭉이 되어 꽃의 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외로울 줄 알면서도, 상처가 될 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연모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죠. 그런 상념에 잠기다가 저는 우리 교회 외벽과 분당선 지하철 안에 감성 이미지 광고판에 “당신이 꽃이어서 봄이 옵니다”라는 글귀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 그전,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도 “그대 때문에 봄이 옵니다”라는 글귀를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남북예술협력단 공연 주제를 “봄이 온다”로 정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로 우리 교회 30주년 기념 책자 제목도 “꽃송이 하나로도 봄은 오리라”라고 했습니다.
보통 일반 사람들은 봄이 와서 꽃이 핀다고 합니다. 그것은 서사적이고 일반 산문적인 표현이지요. 그러나 “당신이 꽃이어서 봄이 옵니다”라는 문구는 그 자체가 시이고 이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그대 때문에 봄이 옵니다”, 이 글귀도 반전과 역설이 담겨 있는 시적 표현입니다.
저는 옛날 백설희씨가 부른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그렇게 좋은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국민 디바인 이선희씨가 KBS 다큐에서 독일에 남아 있는 광부와 간호사들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르는걸 보며 그 노래의 깊은 감성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봄날은 간다고 하니까 너무 허전한 것입니다. 물론 그 허전함 속에 힐링이 있고 위로가 있지만 꼭 봄날이 가야 하는가 하는 마음이 들어서 ‘봄날은 온다’라고 가사를 고쳐서 부르곤 합니다.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져도 같이 울던 따뜻한 그 사랑에 봄날은 온다. 따뜻한 님 때문에 봄날은 온다.”
코로나로 인하여 차가운 세상이지만, 우리 마음 속에 따뜻한 꽃, 화사한 꽃, 사랑의 꽃을 피우면 그 꽃 때문에 우리에게 진짜 봄이 오지 않을까요? 우리 마음과 삶에서 향기롭게 피어난 꽃 때문에 오는 봄은 코로나 바이러스도 물러나게 하고 진정으로 살만한 사회를 만들어 줄 겁니다. 이러한 꽃들이 우리 교회 안에서 먼저 피어나기를 원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 속에서 먼저 피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가 코로나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지역 영세 소상인들을 위한 ‘선한소통 상품권’ 운동을 했는데, 각종 일간지에서 잘 보도를 해 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앞으로도 아름다운 꽃들을 많이 피워냈으면 좋겠습니다. 가수 심수봉씨의 노래처럼 백만 송이의 장미를 피워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피운 꽃 때문에 사계의 봄을 넘어서 진정한 봄이 오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