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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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오전에는 전북신학교 샬롬복지관 준공 감사예배에서 설교를 하고 바로 김제 광활교회에 가서 최원귀 집사님 순교자 등재 감사예배 설교를 했습니다. 최원귀 집사님은 김익두 목사님의 부흥성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후 일사각오, 순교자의 믿음으로 194874일에 광활교회를 설립하고 오직 교회와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사셨습니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일어난 1950815일 김제경찰서에서 온갖 폭행과 고문을 당하다가 철사줄에 묶인 채로 생매장 당하여 순교를 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얼마나 참혹한 삶입니까? 최원귀 집사님은 생전에 42녀를 낳았는데 장남인 최대진 장로님이 동생들을 다 키웠습니다. 저는 그 분을 보면서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 주광조 장로님을 만난 것처럼 감격스러웠습니다. 최원귀 집사님의 아들들은 장로님이 되고 딸들은 권사님이 되어 다들 신앙의 명문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런 분들 앞에서 설교하려고 하니 눈물이 울컥거려서 몇 번을 참았습니다.

 

이윽고 제가 순교자 기념등재증서를 드린 후에 차남 최광진 장로님이 인사말씀을 하시면서 아버지를 향한 글을 써서 읽으셨습니다. 그 글을 읽는데 제 가슴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버지, 꿈에도 잊지 못할 6.25, 민족의 가슴에 아픈 상처를 냈던 6.25, 시간이 지나도 빈자리는 크고 가슴은 시리기만 합니다. 아버지 없는 빈자리에 때로 외롭고 때론 힘들었지만 돌이켜 보니 오늘의 우리를 여기까지 지킨 것은 아버지의 순교였습니다. 지나간 70, 가난과 풍요, 고난과 성공이 수없이 교차했지만 가난 속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풍요 속에서 물질이 하나님이라 믿지 않고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견뎌온 것은 아버지가 말없이 가르친 순교의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교회도 어지러워 곁길로 가고 우리도 세속화, 물질화, 영적 전쟁으로 힘들어할 때 그래도 주님의 몸이라 무너진 교회의 기둥을 붙들며 눈물로 지새워온 것도 아버지가 우리 가슴에 새겨준 순교의 교훈 때문이었습니다. 죽으면 살고 죽어야 살며 살아서 죽으면 죽어도 살고 죽어서 살면 영원을 사는 진리를 몸으로 가르친 아버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숲을 이루고 그 숲에서 많은 열매를 맺는 복음의 진리를 죽음으로 가르쳐 주신 아버지, 우리도 아버지처럼 살아 매일 순교적 삶으로 살고 아버지처럼 죽어 매일 순교자의 영광으로 사는 복되고 아름다운 후손들이 되겠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고 아직도 다 오지 않은 부활의 아침을 위해 조국과 교회를 위해 도고해 주소서...(하략)”

 

이러한 내용을 들으면서 그 분들께 너무 감사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실망하지 않고 각 교회에서 장로로, 권사로. 또 장손은 헝가리의 선교사로 간 집안을 이루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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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터툴리안은 순교는 교회 부흥의 씨앗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청년시절 소원도 순교였는데 그렇지 못해서 항상 빚진 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우리가 순교를 하고 싶어도 순교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렇다고 순교를 너무 쉽게 이야기 하거나 아무데나 적용해서도 안 됩니다. 분명한 것은 이럴 때일수록 순교의 정신과 가치가 더 고귀하게 여겨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 진정한 순교의 정신을 회복하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최원귀 집사님의 모든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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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교회 부흥의 씨앗, 순교의 정신이 절실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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