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이충웅 교수.jpg

 

누가는 사도행전 13장 초반까지 바울을 사울이라는 히브리 이름으로 부른다. 이유는 바울이 완벽한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로마시민이고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던 바울이 안디옥교회 내에서 사울이라는 히브리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만 해도 히브리적 사고를 가진 전형적인 유대인이었음을 강조하려는 사도행전 저자인 누가의 의도로 보인다. 다소에서 태어난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이지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대부분 영위하고 있는 헬라식 문화를 많이 접하지는 않았다. 바울은 자신을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다고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상황에서나 다메섹 환상 이후에도 바울은 변함없이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소중히 여긴 것으로 보인다. 사도행전 11장에 바울은 바나바의 권유로 안디옥교회에서 함께 가르치는 사역을 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사도행전 13장에서는 바나바와 바울을 포함한 5명의 다른 지도자들이 소개될 때 놀라운 것은 바울의 이름이 제일 뒤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바울이 가장 뒤에 기록된 것은 아마도 안디옥교회의 주요 지도자들 중에 서열이 가장 낮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사도들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던 바나바를 통해 안디옥교회에 오게 되었지만, 기존의 다른 지도자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입지가 높지 않았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바울이 안디옥에서 사역한 이후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도행전 1122-23절에 따르면 바나바는 예루살렘교회의 보냄을 받아 안디옥으로 왔다. 그는 도착하여 공동체의 모습에서 어떠한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연합함에 만족함을 가지고 바울에게 함께 사역할 것을 제안하기까지 했다.

 

특히 바울은 여성까지도 사역자로 세우고 동역하였다는 것을 그가 기록한 서신들에 나타난다. 바울은 자신의 동역자들 가운데 상당수의 여성들을 세워 동료로서 존중하며 함께 사역하는 모습을 보인다. 바울은 여성의 지위가 인정되지 않던 시대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성별을 차별하지 않는 모습에서 점진적으로 확대된 다문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울의 선교사역에 여성들이 여러 모양으로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것이다. 우선 바울은 분명히 여성을 존중하고 신뢰하였다. 뵈뵈에게 로마로 보내는 편지를 맡겼다는 것은 그녀를 무척 신뢰하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브리스가의 믿음을 칭찬하며 자신의 동역자라고 말하였고, 그녀를 자신의 생명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한 것도 마찬가지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유니아를 향해서는 자신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따르게 된 사도라고 칭하였다. 바울은 그 당시 우월감이 대단한 남성들도 쉽게 받지 못한 칭찬과 존경을 여성 사역자들에게 표하였고 심지어 그들에게 권위도 부여하였다. 집사, 목회자, 심지어 사도로까지 부르며 인정했던 이 여성 사역자들은 바울의 선교사역이 확장되고 안정되는 일에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교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아마도 인종과 성별을 차별하지 않고 함께 동역 할 수 있었던 것은 안디옥교회에서 다문화적인 사역을 경험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서 보기 힘든 안디옥교회의 다문화적인 여러 경험은 여성사역자를 비롯하여 이방인 사역자들에 대한 바울의 시각에도 변화를 주었다.

 

안디옥교회가 이방인과 유대인이 공존하는 다문화교회의 기반이 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시리아 안디옥이 많은 민족적 배경을 가진 자들이 공존하는 다문화적 도시인 것에서 주된 이유가 되었다. 당시 예루살렘교회가 유대교 또는 유대인 혈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비춰볼 때, 시리아 안디옥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그리스도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은 안디옥교회가 새로운 형태의 교회였음을 증명한다. 안디옥교회가 인종과 민족을 넘어 신분과 사회적 계층 또한 구분 없이 함께 공동체를 이룬 것은 그 당시 사회적으로도 새로운 이슈였고, 신약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든 다문화적 교회의 모습이며 모델이 된다.

 

안디옥교회에서 보여진 다문화적 요소들이 초기 이방지역에 형성된 교회들 가운데 충분히 내포되어 있을 가능성을 짐작 할 수 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여러 지역의 초대교회들을 다문화적 해석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조명한다면 다양함이 공존하는 현시대적 상황들에 성경적인 대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듯이 모든 사회가 다문화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고 그 사회 속에 존재하는 교회 역시 이 문화적인 현상을 피할 수 없다면 안디옥 교회가 가지는 함의는 크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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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칼럼] 이충웅 교수의 ‘안디옥교회가 끼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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