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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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얼마 만입니까? 저는 지금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까치가 비 오는 날 엄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4차 대유행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화상줌과 유튜브를 의존했던 지난날들... 그럴수록 저는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서 더 새로운 길을 열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정부의 방역조치에 항의하는 마음으로 4주 연속 새벽과 저녁에 특별기도회를 인도하고, 낮에는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며 뛰어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무리하여 그만 성대 결절이 생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특새와 밤 집회를 중단해야 했지만 대신 저녁이면 텅 빈 예배당에서 홀로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저는 언제든지 강단에 와서 기도할 수 있지만 우리 성도들은 얼마나 현장예배에 달려오고 싶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도 여러분들을 현장 예배에 무조건 오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지역은 코로나로 인해 이미 죽음의 도시를 경험해 본 적이 있었잖아요. 현장예배가 거의 초토화되고 유튜브와 화상 줌에 의지해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을 때, 저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화상 줌으로 성도들을 향해서 인사하였지만, 여러분을 만날 수 없고, 함께 손을 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리고 저렸습니다. 물론 화상 줌으로는 눈동자라도 마주칠 수 있지요. 그러나 유튜브로 예배드리는 분들과는 눈동자조차도 마주칠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또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저는 온 힘을 다해 말씀을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정말 그립고 보고픈 성도 여러분! 저는 새에덴교회를 개척한 이후부터 교회가 저의 집이었으며, 성도들이 저의 가족이었습니다. 교회가 제 생명이요 성도가 제 목숨이었습니다. 새에덴교회가 저였고 제가 새에덴교회였습니다. 성도들이 아프면 저도 아팠고, 성도들이 힘들어하면 저도 힘들어했고, 성도들이 울면 저도 울었습니다. 단 한순간도 교회와 저는 뗄 수 없었고, 제 인생에서 여러분들을 떼어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여러분과 만나지 못하고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없었으니 얼마나 제 가슴이 아프고 그리웠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이런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더 깨닫게 되었고, 여러분도 저를 그리워하고 교회를 사모해서 온 줄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날 앉을 자리가 없도록 성전의 자리를 채워주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였는지 새삼스럽게 느끼며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는 백신 인센티브를 적용하여 20%까지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게 뭐 대단하냐고 하면서 지금도 정부의 관제적, 획일적 방역조치에 저항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정도라도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토요일 날 어떻게 잠을 이룰 것인지 말입니다. 저는 개척교회 때부터 토요일 날은 잠을 못 이뤘습니다. 특별히 이번 주는 20%라고 하는 단어가 제 머릿속에 꽂혀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이번 토요일은 개척교회 때의 초심이 밀물처럼 더욱 몰려와 깊은 불면과 잔인하게 싸우게 될 것 같습니다. 주일 날 그 동안 만나보지 못한 성도들을 볼 것을 생각하니 어찌 쉽사리 잠이 들겠습니까? 지금 제 눈동자에는 자주 보지 못한 성도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런 얼굴들이 토요일 밤에 더 어른거린다면, 불면과 싸워야겠지요. 통상 이런 밤은 수면제를 먹어도 금방 깨버리곤 하거든요. 그러나 잠이 깨든, 깨지 않던 이런 기대와 설레임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요. 잠이 깨면 깬 대로 감사할 것이고, 깨지 않지만 잠결 속에서 멀리 떨어졌다고 느껴졌던 성도들의 얼굴이 가까이서 어른거린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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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설교는 그대, 왕관의 보석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왕관의 보석이 되어 현장예배에 오실 것입니다. 근데 진짜 또 하나의 걱정이 있습니다. 까치 목사는 비를 맞고라도 엄지를 기다릴 텐데, 엄지 성도가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제가 기다리던 성도들이 행여라도 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 말이죠. 비 오는 날 까치는 땅에 갈증이라는 글을 남기고 돌아갔지만 저는 그 자리에서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행여 한 동안 하나님과 교회보다는 다른 것과 마음을 주고 받은 적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엄지였다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탕부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여러분들을 다 받아주시고 품어주실 것입니다. 부디 노마드 성도로 남지 마시고 영혼의 토포필리아, 현장 예배로 와 주소서. 금주에 못 오시면 다음 주에, 이번 달에 못 오시면 다음 달에도 오셔도 됩니다. 저는 까치 목사가 되어 사랑하는 엄지 성도들을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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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까치 목사는 엄지 성도를 끝까지 기다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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